출총제 대안을 둘러싼 논란, 그 문제점과 과제

[경제시론] 2006-12-10 |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윤창현

최근 경제가 심상치 않다. 실업은 증가하고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걱정인 이 상황에서 오갈 데 없는 자금이 주거용 부동산 부문으로 총집합하면서 국지적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고, 이는 결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하에서의 인플레, 곧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의 성장동력이 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지금 국내경제에 있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자금이 풍부하고 이익을 많이 내는 국내의 대기업들이 투자의욕을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으로 투자를 왕성하게 진행할 때 기업에게 미래가 있고 국내경제에도 미래가 있다고 본다면, 결국 지금 국내경제의 큰 문제는 대기업들의 과소투자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경제정책 전반의 재검토와 아울러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하였다. 사법제도나 사전적 규제가 가진 문제는 1종 오류와 2종 오류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모든 피의자는 일단 무죄라는 가설을 세우고 나서 증거가 나오는 경우에 유죄라는 결론을 내도록 하는 경우, 증거에 대한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의 오류가 나타난다.
첫 번째 오류는 약간의 증거만 있어도 유죄가 되도록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정상인을 범인으로 몰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1종 오류가 심해지며, 반대로 확실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와야 유죄라고 인정하는 경우 범인을 정상인으로 판정하여 놓치는 2종 오류가 나타난다. 이러한 가설검정의 오류에 대해 현대통계학은 확실한 결론을 내려주고 있는데 정상인을 범인으로 몰게 되는 1종 오류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사전적 규제는 되도록 완화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오는 바, 현재 대기업집단에 대해 시행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도 이러한 강력한 사전적 규제에 해당한다.

강력한 사전적 규제, 출총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6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이후 두 번의 개정(1990년 1월, 1994년 12월)을 거쳐 1998년 2월 폐지되었다가, 1999년 12월부터 재도입되어 2001년 4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후 2002년 1월 다시 개정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쳤다.
개정-폐지-재도입-개정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자산총액 6조 원인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에 대해 자회사 지분 출자에 순자산 25%의 쿼터를 설정하는 이 제도의 목적은 처음에는 재무구조 개선이었는데 얼마 후 소유분산으로 바뀌더니 다시 업종전문화로 바뀌고 다시 소유지배구조 개선으로 변화하는 등 목적이 계속 바뀌어 왔다.
또한, 획일적인 규제가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위해 예외조항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가 출자총액의 60%를 상회하고 있다. 이 규제는 계속 누더기화하면서 규제로서의 수명이 다해가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 자산규모 10조 원 이상 그룹에 속하는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에 대해 적용한다는 중핵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로 옷을 갈아입으려 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회사들이 계열사를 포함한 다른 회사에 출자하는 이유는 계열사간 피라미드식 출자 또는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구조조정, 신규사업 진출, 전략적 제휴, 위험분산 등을 통하여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는 생산적 투자의 목적도 있다. 그런데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문제는 이와 같은 생산적 성격의 투자마저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사전적이고도 획일적인 규제로서 투자의 성격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매우 무차별적이고 비효율적인 규제방식이다.
물론 출자는 타회사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재무적 행위이고 투자는 자본재 구입이나 공장 신·증설과 같은 행위이므로 당연히 다르지만, 기업이 신규사업에 진출시 우선 해당회사 출자를 통해 지분을 획득한 후 자회사 관계를 형성해놓고 투자를 진행하는 점을 감안할 때 출자제한은 곧 투자제한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률적인 규제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지배력의 확장과는 무관하거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출자는 많은 적용제외와 예외조항을 통해 허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러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노력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도 적용제외 및 예외조항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출자’를 모두 망라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혜택을 보고 다른 기업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되는 데에 따른 선별적 규제가 문제되는 것이다. 수많은 적용제외와 예외조항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게 되어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가 되는 적용제외 및 예외조항들을 축소하려고 하고, 기업들은 이에 반발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 출총제의 대안으로 검토된 순환출자는 더욱 문제가 크다. 순환출자금지제도는 소유권을 초과하는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며 가공자본 형성을 시정하자는 의도로 도입이 검토된 바 있으나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도입이 무산된 것은 이 제도의 적용대상이 되는 기업의 규제순응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과 이 제도가 과연 추구하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가의 여부가 불투명한 데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환출자 금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상당한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가 검토한 대로 A→B→C→D→A 식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를 직접 해소하도록 하는 방안이 통과되었더라면 해당 기업은 고리를 한 개 끊어야 했을텐데, 예를 들어 D가 소유한 A주식을 이 출자 고리에 속하지 않은 G에게 넘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G기업이 기존 계열사 중 하나라고 하면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구조가 G→A→B→C→D가 될 뿐이다. 그러나 비용은 상당히 든다. G가 A지분의 매입시 필요한 자금이 만만치 않다. 이는 또한 기존에 보유하던 주식을 새로 도입한 법규정에 의해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므로 소급입법 논란이 있을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주요 순환출자구조를 제거하기 위해 약 1조 원 내지 2조 원 정도의 계열사 지분매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순환출자 금지규제는 결국 또 하나의 정책실험으로서 중복규제이며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기업환경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가능성마저 엿보였다. 사실 순환출자의 완전금지는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기준 도입시 결국 적용제외와 예외인정이 나타나게 되어 결과적으로 현행 출총제처럼 누더기 규제로 전락할 것이다.

소유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나라는 없다

지배주주가 설립한 기업이 다시 피라미드나 환상형 순환출자 등을 통해 기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의 내부지분이 생기면 지배주주는 소유권보다 더 높은 의결권을 확보하게 되지만 이처럼 직접 소유지분 대비 높은 의결권을 가지는 CMS(Controlling Minority Structure) 문제는 우리나라를 포함 전세계의 많은 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사실상 일반화된 구조이다. 피라미드 출자의 경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CMS로서 주로 아시아권과 유럽대륙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금지되는 상호출자의 경우도 독일, 일본과 태국 등의 중국계 기업집단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최근 출총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과정에서 환상형 순환출자를 직접적으로 규제하자는 대안이 제시된 바 있으나, 협의과정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도입이 일단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부사항에 대한 금지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순환출자 같은 소유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나라는 없다는 점, 따라서 구조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고 오히려 기업성과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직접규제는 배제하고 기업 내·외부 견제시스템과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6년 12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