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대책이 시급하다

[경제시론] 2005-11-17 | 삼성전자 삼성전자 총괄 보안그룹장(상무) 노시영

'최근 7년 동안의 기술유출 사건이 85건, 피해액이 77조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데이터가 잊을 만 하면 신문, TV 뉴스시간에 한 번씩 등장한다. 필자와 같은 기업의 보안 책임자는 물론 일반 국민이라도 '왜 기술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을 저절로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인터넷 중심의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정보'와 '스피드'는 생존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라 할지라도 정보의 흐름을 간과하면 당장 쇠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정보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기업들은 "정보 전쟁"을 위한 "정보 획득의 비용과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산업스파이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2004년 국내 모기업에서 CDMA 휴대폰 설계 및 생산기술 자료의 해외유출 사고가 있었다. 단 12억 원의 매수·공작금액으로 총 206억 원을 투자하여 완성한 기술을 단시간에 획득함으로써 국내업체와의 기술격차를 2년 6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해 버린 이 사건은 특히 반도체, 정보통신 등 초스피드 정보집약형 산업을 성장엔진으로 삼는 우리나라로서는 핵심 산업기술 유출이 단순한 기업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중대한 경쟁력 손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호시탐탐 산업기술을 노리는 위협이 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 없이 연구개발에만 몰두하며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기업들이 많은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대부분 기업의 경영진은 적극적인 R&D 투자는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지켜내는 정보보안 투자에 대해서는 아직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정보보안 예산이 매출액의 1%에도 못 미치는 기업이 전체의 80%이고, 보안담당 부서가 있는 기업은 전체 13%이며, 중소기업의 71%는 보안규정 등의 기본장치 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국내 기업의 산업기밀 유출방지 노력이 아직도 미흡함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산업보안 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일찍부터 산업기밀 유출방지 활동은 물론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산업정보 수집 활동을 정부차원에서 강화해 오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는 최근 미국 등 서방 5개국의 에셜론(Echelon,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전 세계 위성통신망에 대한 감청체계)을 통한 산업정보 수집활동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아시아의 경제대국을 꿈꾸고 있는 중국도 해외 첨단산업의 국내 투자유치에 적극적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산업분야의 원천기술 및 생산기술을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에 들어서야 영업비밀보호법이 제정되었으며, 2004년에야 미흡한 처벌수준을 강화하기 위한 규정 개정이 이루어졌다. 2004년 국내 한 대기업의 휴대폰 기술유출 사건의 경우 명백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 등으로 정작 기술유출 장본인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진 것은 산업기밀 유출에 대한 인식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산업기밀 유출은 기업과 국가 모두의 책임이며, 마치 잔뜩 물을 담고 있는 바가지의 양끝을 잡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굳이 엎지르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만 해도 물이 쏟아지는 형국에 비유할 수 있다.

기업들은 경영활동의 존속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안 투자 = 비용"이라는 생각을 바꾸어 자사의 핵심기술 보호에 나서야 할 때이다. 기술유출 사고의 약 80% 이상이 전·현직 임직원을 통해 일어난다는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는 결국 산업기밀 유출방지가 기업 당사자의 적극적인 내부 보안 관리체계 확립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제시해 준다.

산업기밀 유출이 해당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위협요인이 된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핵심기술 보호, 산업스파이의 처벌강화 등 관련법을 강화하는 이외에도 국책 연구과제 또는 첨단산업의 연구·생산기지에 대해 일정 수준의 보안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산업기술유출방지법"등과 같은 산업보안에 관한 전문법을 제정하여 국익보호에 나서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국가정보원 등 정부의 최근 노력은 기술유출에 둔감한 우리 기업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기밀 유출을 막지 못할 경우, 기술 경쟁국이나 후발 국가의 추격에 날개를 달아 주어 멀지 않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걱정이 아직은 떠나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