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법안,남소방지를 위한 철저한 보완 시급

[경제시론] 2003-09-17 | 양세영 양세영: 증권집단소송법안,남소방지를 위한 철저한 보완 시급

국회 법사위는 지난 8월 29일 격론 끝에 증권집단소송법안을 정기국회로 넘겨 재논의하기로 하였다. 피고신청에 의한 담보제공 의무의 부여 등 남소방지 방안을 도입하자는 주장과 소위통과안을 그대로 수용하자는 의견이 계속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후 9월 17일 개최된 법사위에서는 최근 경제상황과 기업의 부담증가,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대비 부족 등을 들어 보다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된 가운데 다시 심의가 연기되었다.

도입취지와는 괴리가 있는 법 실행 현실

증권집단소송제는 90년대 초반부터 논의가 시작되었음에도 국회와 학계로부터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는 등 유보하자는 쪽의 의견이 우세하였다.그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첫째, 증권집단소송제가 겨냥하고 있는 소액주주보호와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라는 도입취지가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은 거의 유일하게 실행되고 있다시피한 미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소액주주가 받는 배상액은 실제 피해액보다 미미한 반면, 변호사나 법무법인의 수임료 수익은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투명성이 높은 유수의 기업들이 소송대상이 되어 투명하면 집단소송에 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둘째, 대표적인 영미법적 제도로서 대륙법체계인 우리나라 법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나친 기판력의 확장은 위헌가능성 마저 제기되고 있다.셋째, 증권집단소송제도가 경제개혁 수단으로 타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들이 소송을 피하기 위해 투명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 기능이 예상되나, 엔론,월드컴 등 미국기업의 잇따른 회계부정사태를 보면, 기대되었던 분식회계 예방기능은 실효성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과연 집단소송제가 경제개혁의 적합한 수단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법이 경제개혁의 효과적 수단이라면 왜 미국에서는 90년대 이후 3차례나 걸쳐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었겠는가.어떤 소송절차가 효과적인 다수의 소액피해주주에 대한 구제 수단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를 개혁입법과 단순 등식화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이다. 지금까지 활성화된 입법례가 미국이 유일하고, 미국에서도 문제가 많아 골칫거리인 법을 왜 굳이 도입하려 하느냐고 한 어느 여당 국회의원의 질타는 문제의 핵심을 잘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제1소위 합의안, 남소방지에 크게 미흡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경제계는 금년 들어 철저한 남소방지책이 마련된다면 그동안 경제적 적폐로 인식되어 온 회계관행을 일신한다는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지난 7월 23일 국회 법사위 법안 심사 제1소위를 통과한 내용은 경제계가 주장해온 보완장치들이 사실상 전혀 반영되지 않아, 그대로 시행될 경우 경제에 심대한 부작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 5단체는 물론 상장사협의회, 코스닥 등록법인협의회,벤처기업협회 등이 공동으로 남소방지 방안의 보완을 국회에 건의하였다. 건의 주요내용은 첫째,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들의 보유주식 합계를 발생주식 총수의 0.01% 에서 0.05% 로 높이고, 주식가액 ?1억원? 조항은 삭제하여야 한다.둘째, 증권집단소송이 제기되면 해당법원은 손해배상 청구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감독 및검사하는 기관으로부터 관련자료와 이에 관한 의견을 제출받아 소송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셋째, 피고기업이 신청할 경우 법원이 원고에게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담보제공 의무부여로 악의적 소송 예방해야

건의내용 중 특히 담보제공 부분은 지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크게 이슈로 부각되었던 부분이다. 도입반대 측의 주요한 논리는 첫째, 법원이 소송을 허가하는 시스템에서, 다시 담보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적 규제이며, 소액주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지나치게 원고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셋째, 법원이 허가전 원고와 피고를 불러 심문을 하게 되므로 남소여부를 여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담보제공은 악의적 소송이 우려될 때 기업의 신청과 소명에 의해 법원이 허가할 수 있는 임의적 규정으로서 원고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담보 명령은 소송허가시 동시에 이루어지므로 별도의 규제라 할 수 없다.

둘째, 담보로 인한 원고의 부담은 크지 않다. 통상 담보금액은 소송가액,원고의 지불능력 등을 감안하여 법원이 원고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금액으로 결정하는 것이 판례이며, 원고가 악의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거나, 화해로 종결될 경우 다시 찾을 수 있어 원고의 재판권을 제한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셋째, 담보제공은 민사소송법,상법 등에 유사 입법례가 있다. 예컨대,회사 해산명령청구시 담보제공(상법 제176조3항의3),총회결의 취소제소시 담보제공(상법 제377조1항), 주주대표소송 청구시 담보제공(상법 403조7항), 외국소재 원고의 담보제공(민사소송법 117조), 가집행 면제시 담보제공(민사소송법213조) 등이다. 이러한 입법례는 모두 원고의 남소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증권집단소송은 기판력 확장으로 위의 경우들 보다 훨씬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더 심각하므로 담보제공의 필요성이 한층 크다고 할 수 있다. 집단소송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호주 등도 악의적 소송자 또는 대리인에게 대해 담보 명령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셋째, 심문을 통해 악의적 소송이면 허가해주지 않으면 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악의적 소송여부는 소송허가전 심문단계에서 밝혀지기는 힘들고, 본안 소송과정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현재 법안의 소송허가구조는 법원이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허가하지 않을 수 없어 악의의 혐의만 가지고 소송자체를 기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법원은 소송을 허가하는 대신 담보제공을 명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담보제공이라는 장치가 필요한 것은 선의의 기업과 다수의 주주들이 남소로 입을 피해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보상만 있고, 패소시 책임부담은 없는 현재의 유인구조로는 심각한 남소만 유발할 뿐이다. 기업이 승소해도, 대상 원고의 확정이 어렵고, 소액 주주가 대부분이어서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차단되어 있으므로 재판과정 중 입은 막대한 손해를 사실상 배상받을 길이 없다. 따라서, 원고와 피고의 균형을 위해서도 악의적 소송자에게는 심리적 압박을 주어 남소라는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여야 한다.
법의 도입취지가 좋다고 현실에서도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취지와 현실이 따로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제도시행과 그에 따른 예상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대비책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법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특히, 경제개혁이라는 일방적 명분과 국회의 신중한 논의자체를 입법지연이라고 비판하는 일부의 주장에 밀려 결코 졸속으로 처리되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