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경제시론] 2005-07-19 오후 3:47:47 |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김영용

삼성생명, 삼성화재, 그리고 삼성물산이 지난 해 말 국회를 통과하여 금년 4월에 발효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가 보유하는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 제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 삼성 계열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는, 자기 자본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재산권 침해이며, 외국 자본에 대해 자국 기업을 역차별 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를 비롯한 일부 계열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쉬워지며, 기본권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위헌소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여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외국 자본이 일사불란한 행동을 하기 어려우므로 적대적 인수?합병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의결권 제한의 구체적 내용은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하는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 보유 지분의 의결권을 현재 30%에서 내년 4월 1일부터 매년 5% 포인트씩 하향 조정하여 2008년에는 15%로 축소하는 것이다. 의결권 한도가 30%라는 말은 비금융계열사나 개인이 보유하는 지분 합계가 30%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금융계열사 보유 지분의 의결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의결권 제한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이른바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정위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돼야 한다는 믿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결권 제한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집단에 의한 독과점화로 경쟁이 제한되면 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경쟁 조건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진입장벽 유무다. 정부의 진입장벽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소수의 기업이 남는다 하더라도, 이는 효율성의 결과이기 때문에 하등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기업의 수와 경쟁의 정도 간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정거래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력 집중 억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 같은 개방화 시대에는 직?간접 대체재를 생산하는 외국 기업이나 기업집단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국내 시장만 고려한 독과점 판단은 설득력이 없다.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도 논리적 타당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사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높은 수익을 올려 회사의 번창을 꾀함은 물론, 고객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 금융사의 자산 운용 현황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이 돈을 맡기는 것은 이들 금융사의 성과가 좋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장 평가이므로 법이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은행이 부실화되었을 때 사람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사에 많은 돈을 맡긴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산 운용의 결과로 계열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자산 운용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다. 또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주주가 계열기업들을 지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도 논리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의사결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법이다.

둘째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식회사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배주주는 소액주주와는 달리 주식시장에서 한꺼번에 대량의 주식을 팔고 떠나기 어렵다. 경영권은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재산권을 의미하므로 지배주주에게는 경영진이 자신에게 미칠 수 있는 피해를 해소할 수 있는 경영 참여의 길이 열려 있어야 하며, 이는 곧 의결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적 기반이 된다.

셋째,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구분할 이유도 없다. 미국을 비롯하여 두 자본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스위스와 같이 전혀 구분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금융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 이후 미국은 두 자본의 분리 규제를 철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산업자본이 은행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스위스 은행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정책에 의해 외환 위기 이후 많은 금융기관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물론 똑같은 자본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으로 구분하는 것도 땅을 업무용과 비업무용으로 구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이한 일이다.

넷째, 보험업법과 투신법 등, 현행 금융업법은 금융계열사가 타 계열사의 주식을 취득하는데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한 규제 아래서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을 다시 제한하는 것은 분명한 이중규제다.

다섯째, 외국계 금융사나 펀드는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마당에 우호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져 적대적 인수?합병에 더 쉽게 노출된다. 이에 더하여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5%를 초과하는 지분을 강제 매각하도록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 우리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더욱 더 쉽게 노출될 것이다. 작년 말 현재 삼성전자의 주식보유 현황은 삼성생명 7.99%, 삼성물산 4.43%, 삼성화재 1.39%, 이건희 회장 1.91%, 기타 특수 관계인 2.05 등, 총 17.72%인 반면에, 외국인 지분 54.13% 중 10대 투자자의 합계는 20%를 약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계열사들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으로 그룹의 출자 여력이 2조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분 보유 현황이 그대로 유지되고 의결권이 15%로 축소되면 그룹 지분은 15%가 되어 외국 자본의 삼성전자 인수?합병은 더욱 쉬워진다. 공정위는 경영권 위기 시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국회 의결 사안이므로 당장 대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회가 이를 의결한다면 국가신인도 하락 및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외국 자본은 경영권 확보가 아니더라도 1대 또는 2대 주주 지위를 점한 다음, 경영 간섭을 통하여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외국 자본의 국내 시장 참여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국내 자본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나, 자국 기업을 역차별함으로써 국부 유출을 조장할 이유는 없다.

결국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목적은 경제력 집중 억제에 있다. 그러나 이는 두고두고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망령이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진입장벽이 없는 환경에서 경쟁을 통해 나온 결과를 경제력 집중이라는 낡은 개념으로 덧씌워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잘 나가는 기업집단의 활동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업집단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경쟁을 북돋우고 촉진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