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지배 괴리도 : 출자총액규제의 논거인가?

[경제시론] 2003-10-29 | 신종익 신종익: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출자총액규제의 향후 개편방향이 논의되는 가운데 대주주의 소유-지배 괴리도를 기준으로 출자총액규제의 적용여부를 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대의 한 연구소는 괴리도가 낮은 기업부터 출자규제에서 졸업시키자는 입장이고, 한국개발연구원도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괴리도가 크면 기업의 감시기능이 작동하기 어려우 지배구조가 나쁘고,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은 대리인비용이 발생하여 기업성과도 좋지 않다는 논거이다.

이 같은 연구는 출자총액규제의 목표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논의이다. 그간 출자규제의 목표는 다각화 억제, 재무구조 개선, 그룹의 동반부실화 방지, 경제력집중 억제 등과 같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출자규제의 속성때문에 대기업들은 계열사가 늘거나 기업성과가 좋아 자산이 늘어나도 정부의 규제나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결권 괴리도를 출자규제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소유-지배 괴리현상이 있다고 해서 대리인비용이나 회사재산의 유출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개연성을 이유로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밤에는 낮보다 치안이 어려우므로 야간통행을 아예 금지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 소유와 지배가 어느 정도 괴리되어야 적절한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둘째, 소유-지배 괴리는 출자총액을 현재와 같이 순자산의 25%로 규제하더라도 해소할 수 없다. 설령 타회사 출자를 완전 금지하더라도 의결권 괴리는 여전히 발생한다. 주식회사는 타인의 자본을 활용하여 사업하는 회사이며, 대주주는 항상 자신의 지분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 같은 소유-지배의 괴리가 주식회사의 매력이며, 그래서 회사형태중에서 주식회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소유-지배의 왜곡은 기업집단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나 발생한다. 선거에 3명이 입후보하면 34%를 득표한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데, 당선자는 34%의 지분(득표)으로 100%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소유-지배의 괴리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내외부 감시장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며, 그 원인을 규제하지 않는다.

셋째, 소유-지배 괴리와 기업지배구조는 별개이다. 괴리도가 높아도 지배구조가 우량한 기업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창업주가 경영하여 괴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30대 그룹중에서 조기에 도산한 그룹도 상당히 많았다. 지배구조가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회사들의 경영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의 주가나 외국인 지분율은 다른 기업보다 높은 경우가 없었다. 그만큼 지배구조는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배구조라는 새 개념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최고의 척도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지배구조에 관한 영미식 제도가 국제기준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채 계속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는 사업구조나 재무구조와 같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요소중의 하나일 뿐이며,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지배구조보다 후자를 더 중시한다.

OECD가 지적한 것처럼 좋은 지배구조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지배구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미식 지배구조의 작동 여부를 평가하여 국내 기업을 규제한다면 ‘문어발 규제’나 ‘마구잡이 규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지배구조는 평가자에 따라 편차가 클 수 밖에 없으며, 지배구조가 나쁘다는 이유로 어떤 기업활동도 규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도입한 지배구조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기존의 규제를 계속해야 한다는 논리도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투자가들의 의식이나 권리구제 방식이 영미국가와 현저히 다른데도 이들 나라에서 도입한 지배구조 제도가 바로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이다. 영미식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행정부, 의회, 정당, 사회단체 들도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KDI가 평가했듯이 지배구조에 관한 우리의 법제가 미국 수준이다. 따라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지배구조에 관한 규제 강화는 지양하고, 소유-지배 괴리도를 포함한 기업의 지배구조 내용을 공시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기업들은 투자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좋은 지배구조 모델이 계속 개발되고 진화할 것이다. 괴리도가 높아 자본조달이나 주가 저평가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괴리도를 낮출 것이다.

소유-지배 괴리도나 지배구조를 기준으로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적자를 내는 기업을 규제하는 것과 같다. 적자기업이 이익을 내도록 하는 더 좋은 방법은 규제가 아니라 재무제표를 정확히 공시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기업에게는 정부의 제재보다 시장의 감시가 더 무섭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높은 배당률로 경쟁하고, 다른 기업은 장래의 수익성과 사업구조로 경쟁하듯이 지배구조도 기업들이 경쟁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