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정책 기조 재검토 과제

[경제시론] 2007-09-06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윤창현

최근 금산분리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 때 부각이 된 이 이슈가 최근 야당 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활발한 논의의 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금산분리의 주요 근거는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시스템 리스크는 산업이 잘못되었을 때 여기에 대출해 준 은행이 부실화되고 은행이 불안정하게 되었을 때 금융시장 전반에 예금인출 현상이 발생하면서 모든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제어장치는 우리 제도상에 잘 마련되어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의 은행법은 대주주를 포함한 동일차주(대기업집단 포함)에 대한 여신한도를 강화해 동일차주와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은행 자기자본의 25% 이내로 제한(은행법 35조와 35조의2)하고 있으며, 대주주가 발행한 주식도 은행 자본의 1% 범위 안에서만 취득할 수 있도록 제한(은행법 35조의3)하고 있다. 또한 대주주가 금융기관의 이익에 반하여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보험업법도 대주주 및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채권 및 주식 소유액의 한도를 정하고 있다. 대주주 및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는 총자산의 2%, 채권 및 주식 소유 합계는 총자산의 3%로 제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에서는 금융의 범주를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게 확대 해석하여 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금산분리원칙은 국내 산업자본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

그렇다면 과연 국제적으로 ‘금산분리의 원칙’이 존재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금융과 산업의 관계는 경제발전 단계와 산업자금 조달방식의 차이 등 각국이 역사적으로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에 따라 다르다. 굳이 구분하자면 영국과 미국의 경우 금산분리의 형태를 취했으며,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일정한 형태의 금산결합을 용인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은행과 비금융기업 간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합의가 존재한 적이 없다.
미국에서 금산분리를 말할 때 ‘금’은 일반적으로 상업은행(Commercial Banking)에 한정된 개념이다. 따라서 굳이 분류하자면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포함한 비은행기업은 ‘산’으로 볼 수 있다. 1933년 대공황의 와중에서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금하는 은행법(Glass-Steagall Act)이 통과되었으나 거꾸로 산업의 금융지배는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이 통과될 때까지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금’의 개념을 제2금융권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장 해석하여 이를 산업자본과 분리시키겠다는 최근 우리나라의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렵다. 또한 미국에서 은행법 자체는 1999년에 금융현대화법(Financial Modernization Act)이 통과되면서 폐지되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금산분리원칙이 현재 미국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10%까지 산업자본이 은행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자유롭게 인정하고 있으며, 이것을 초과하는 경우 금융감독 당국은 적격성 심사를 통해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허용한다. 은행의 산업자본에 대한 지배 또한 일반적으로 1개 회사에 대해 은행의 자본금의 15%까지 투자를 허용하고 일반 회사에 대한 투자의 전체 합계액이 60%를 넘지 않는 한에 있어서 규제하지 않는다.
‘금산분리의 원칙’을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고 이를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결국 우리의 은행산업은 거의 외국자본에게 넘어갔다. 예외적이기는 했지만 극동건설을 소유했던 론스타가 외환은행까지 소유하게 된 것을 보면 금산분리원칙은 국내 산업자본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GE는 미국 내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인 GE캐피털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또한 GE캐피털은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 직접 은행을 경영하고 있다. GE 전체 매출 중 금융업 비중이 5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도 유통산업(세인스베리, 테스코 등)에 인터넷 뱅킹을 중심으로 은행업이 허용되고 있다. 이들 기업에서 금융업은 주요한 경쟁력의 기반이다. 일본 소니는 사쿠라은행 등과의 제휴에 의해 인터넷 전업은행인 소니은행을 운영하고 있고, 후지쯔, 사쿠라은행, 일본 생명 등 7개사도 재팬 네트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소니은행의 경우 예금, 대출, 자금결제 등의 업무까지 하고 있다.
세계 제1의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은 철강회사를 지어본 일이 없다. 약 16회에 걸친 인수합병만을 통해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이 회사의 성공방정식은 부실회사 인수 후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바이아웃 앤드 턴어라운드 방식이다. 대부분의 사모펀드들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이 때문에 이 회사를 제조기업이 아니라 금융회사라고 보는 시각까지 존재한다. GE는 제품에 여러 가지 서비스를 붙이고 거기에 금융을 붙여서 복합상품을 만들어 판다. 금융은 서비스의 일종이고 서비스를 제품과 결합할 때 더욱 시너지가 생긴다는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은행을 포함한 금융부문은 특별한 업종이기는 하나 산업과 자꾸 통합시켜서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자금을 빼돌려서 계열사를 지원한 후 같이 파산할 거라는 식의 과거회상적 시각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지금은 과소자본의 시대가 아니라 과잉자본의 시대이다. 돈이 남아돌아서 걱정인 시대인 것이다. 은행을 소유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의 기업이면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얼마든지 자금을 구할 수가 있는 상황이고 은행들마저 이들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자금이 필요 없어서 안 쓰는 상황이다. 진출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만일 진출을 할 경우 이는 남아도는 자본을 금융산업에 투자하여 회사 자체를 철저하게 좋은 회사로 운영하여 이익을 내자는 차원이지 계열사에 일방적으로 자금을 대출하여 자금을 빼돌리고 불법대출을 하여 은행과 기업을 동시에 파산시키려는 식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사외이사제도를 포함, 투명경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계열사 지원을 하는 상황은 이래저래 지나친 억측일 수가 있다.

금산분리원칙 폐지할 때다

이제 금산분리원칙은 폐지할 때가 왔다. 적절한 감독과 규제를 전제로 기업의 은행산업 진출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대를 맞아 은행의 입지는 과거보다더 어려워질 것이다. 보다 참신한 경영기법과 새로운 시각에서의 경영이 필요한 이때 국내 은행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9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