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자

[경제시론] 2005-04-26 | KAIST 교수 정경원: “우리나라의 디자인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요?” 요즘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 했는데, 디자인 경쟁력은 과연 세계 시장에서 겨룰 만한 것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또한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라는데 대한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이탈리아 가구산업협회 사무총장인 파올로 롬바르디 씨는 “한국 산 가전제품의 경우, 기능면에서는 탁월하지만 디자인 면에서는 아직 멀었다.”라고 평가했다는 신문보도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집에서 국내 최대업체가 만든 가전제품들을 사용해보고 내린 평가라는 것이다. 기자는 “이 같은 평가는 디자인에 관한 높은 안목과 디자인 강국이라는 자부심도 있지만,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산 제품에 대해서는 ‘쳐주고 싶지 않은’ 폐쇄성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논평을 덧붙이고 있다. 실제로 유럽 사람들의 자기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히 높다. 비록 IT를 기반으로 하는 제3의 산업혁명에서 뒤쳐져 기술적으로는 열세라고 할지라도, 디자인에서만큼은 자신들이 최고 수준이라는 생각하는 유럽 사람들이 많다. 훌륭한 디자인의 기반이 되는 문화와 전통에서 자신들이 앞선다고 믿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디자인 역량은 아직도 자부심을 가질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애니콜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의 디자인 수준은 아직도 1.5류에 불과하다”는 이건희 회장의 언급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수준에는 미흡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제적인 디자인 대회에서 우리 제품이 입선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정작 금상(金賞)등과 같은 최고상을 수상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찌 보면 우리 디자인은 장족의 발전을 한 결과로 이제 정상으로 향하는 8부 능선쯤에 도달해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디자인은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져있으나, 대체로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스토리가 부족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와 같은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우리 디자인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근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과 같이 디자인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디자인경영은 기업 경영의 모든 국면에서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활용 하므로써 총체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경영은 특히 윤리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기업이 전개하는 모든 사업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주역이다.

디자인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간을 존중하는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곧 자신들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최종 소비자들의 행복을 이끌어내기 위해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눈길을 끄는 예쁜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천박한 장사꾼과 같은 자세로는 결코 세계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좋은 디자인을 하려는 기업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인간을 위해 디자인하는 기업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럽의 디자인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수상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단지 눈앞의 이윤 추구에 집착하여 눈요기꺼리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단 한점의 작은 결함조차 용납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匠人) 정신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내 것처럼,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디자인해야만 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은 바로 정성을 다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청자와 백자를 빚어낸 우리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린다면 우리 디자인의 경쟁력 업그레이드는 시간문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