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논의 동향과 문제점

[경제시론] 2013-08-12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추광호

상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6월에는 법무부 주최로 상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고, 7월에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하지만 현재 입법예고된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많은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성급하게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개정될 경우 우리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과 부작용 등에 대해 보다 심각한 검토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법 개정안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경우 의무적으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하여 기업의 업무 집행을 담당하도록 하고, 업무 집행에 대한 감독은 이사회가 하도록 하고 있다. 집행임원은 이사회에서 선임 혹은 해임되며, 이들은 이사회 의장을 겸할 수 없다. 또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는 일반이사와는 분리하여 별도로 선출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들이 모두 도입되면 실제로 기업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행 규정에 의하면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회는 사외이사를 과반수로 구성하고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한 감사위원회는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하는데,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출할 때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합해서 3% 이내로 제한되며(합산 3% rule),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의 경우 3% 이상을 가진 주요 주주의 의결권은 3% 이내로 제한된다(단순 3% rule). 다만, 이 같은 감사위원은 기존에 선임된 이사들 중에서 선출된다. 하지만 개정안 대로라면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는 처음부터 일반이사와는 분리하여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즉, 주요 주주들이 자신들의 의결권을 3%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사회 구성원인 감사위원들을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는 기업의 지배주주가 아닌 2대, 혹은 3대 주주 혹은 일부 주주들이 연합하여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인물로 구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보통 상장기업의 이사회는 7명의 이사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3명의 감사위원(이들도 이사이다)을 선출함에 있어 지배주주가 자기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여기에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나머지 4명의 이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최대주주가 아닌 주주들은 21% 정도의 지분만 보유해도 최소한 1명 이상의 이사를 자기들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선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회사의 지분을 과반수 이상 가진 최대주주라 할지라도 이사회의 구성에 있어서는 자기의 의사에 반하는 인물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계속된다. 개정안에 의하면 자산 2조 원 이상인 기업들은 집행임원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고, 집행임원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집행임원의 선임과 해임은 이사회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만약 최대주주의 의사와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에 의해 이사회가 구성되고, 이들에 의해 집행임원이 구성되면, 결국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 할지라도 이사회 구성이나 집행임원을 선임함에 있어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경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우리 자본시장이 외국계 펀드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어

실제로 우리 주요 기업들의 지분구조를 보면 국내 기관투자자나 외국계 펀드들이 2대 혹은 3대, 4대 주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주회사 체제로 되어 있는 A기업의 경우 모회사가 6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 기관투자자가 18%, 외국의 기관투자자가 11%, 기타 5%로 구성되어 있다. 개정안처럼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면서 의결권을 3%로 제한하게 되면, 3명의 감사위원은 모두 국내 혹은 외국 기관투자자의 의사에 따라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4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에도 집중투표제를 실시하게 되면 국내 기관투자자나 외국의 기관투자자 중 일부만 손을 잡으면 쉽게 1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7명의 이사회 멤버 중 4명 이상이 최대주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혹은 상반되게 구성되고, 모회사는 지분의 3분의 2를 가지고도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과거 단기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외국계 펀드들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고, 그 결과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기도 하였다. 상법 개정안 시행은 이 같은 외국계 펀드들에게 좋은 무기를 쥐어 주는 결과가 되고, 우리의 자본시장은 이들 외국계 펀드들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회사마다 소유구조, 영위하는 업종, 시장의 경쟁 정도, 회사가 속한 국가의 자본시장 및 M&A의 발달 정도, 나아가서는 사회환경이나 문화적 성숙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지배구조 역시 회사·국가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는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어느 국가에서도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선임을 분리하며 주요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개정안은 국내의 모든 기업들에 대해 획일화된 지배구조를 강요하고 있다. 마치 체형이 모두 다른데 똑같은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형국이다.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배구조가 무엇인지를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는 주체는 누구보다 바로 해당 기업일 것이다. 따라서 해당 기업들이 각자 처한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경쟁상대가 되는 외국 기업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고, 우리 기업만 이렇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싸우도록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ck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8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