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투자활성화 과제

[경제시론] 2008-02-12 | 전경련 경제본부 경제정책팀 부장 정대순

기업의 투자는 경제심리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올해 초 본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30대 그룹의 금년도 투자계획은 전년의 75조 5,000억 원에 비해 19.1% 늘어난 89조 9,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금까지 기업 투자를 가로막았던 수도권규제,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 등 핵심규제를 새 정부가 완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대통령 당선인이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직접 만나 기업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기업인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역량 집중

올해 들어 기업들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경영으로 전환하고 투자면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꾀할 계획임을 알 수 있다. 즉, 핵심역량 강화 및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투자를 크게 늘리고, 그동안 미뤄왔던 대규모 설비투자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설비 고도화 시설이나 태양광 발전소, 수소 에너지, 2차 전지 등 대체사업 등에 투자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에너지와 소재 기업들은 고유가 상황에 따른 해외자원개발 투자에도 적극 앞장설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 같은 투자계획은 이전의 투자 부진세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사실 2000년 이후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해 왔다. 1970, 80년대에 10~20%였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연평균 2.4%로 감소했다. 2000년대의 연평균 증가율은 1980년대의 5분의 1, 1990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설비투자 증가율이 큰 폭으로 감소한 시기는 외환위기 이후였다. 외환위기 이전(1990~1996)의 설비투자는 연평균 11.1%의 증가율을 보인데 반해 외환위기 이후(1997~2006)에는 연평균 2.1%의 증가에 그쳤다. 본회가 매년 조사한 기업의 경상가격 기준 설비투자액도 외환위기 이전 10년간 연평균 18.7%의 성장세를 보였으나 이후 10년간은 연평균 5.2% 성장에 그쳤다. 1997~2006년 기간중 설비투자의 성장기여율 역시 평균 14.2%를 기록하여 70년대 평균 17.4%, 80년대 평균 26.7%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그나마 2006년에는 운수장비와 중소기업이 투자회복세를 나타냄에 따라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전년대비 7.6%의 투자증가율을 기록하면서 다소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 시기에 비해서 설비투자가 부진한 것은 사실이며, 이에 따라 성장잠재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규제 등 제반 요인으로 인해 최근 설비투자 부진

지금껏 설비투자가 부진했던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투자제약 요인으로는 경기침체 등에 의한 수익성 감소와 위험의 증가, 새로운 투자처 발굴난, 과다한 규제,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상승 등 고비용 구조, 경직된 노사관계, 기업가정신의 위축 등을 들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투자를 잘못했을 경우 떠안아야 하는 위험부담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으며 신규 투자대상을 찾기도 쉽지 않다. 지난 70~80년대에는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의 다양한 투자대상이 존재했으나 최근에는 제조업이 성숙단계에 들어섰고 국제경쟁도 심화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산업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2003년 7,836건이었던 규제건수가 2006년에는 8,083건으로 늘었다. 임금수준과 임금상승률 또한 경쟁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 미 노동통계국이 분석한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보수¹⁾는 1990년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2003년에 279로서 13년간 무려 179%나 상승했다. 이는 2위인 싱가포르의 상승률 98.8%에 비해 2배, 일본 60.2%, 대만 50.2%, 미국 49.3% 등보다는 3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반면, 2000년부터 2004년 기간중 연평균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 40.0달러, 영국 32.1달러, 일본 39.9달러, OECD 평균 27.0달러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훨씬 낮은 10.4달러에 그치고 있다. 산업단지 분양가격도 일본, 대만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다른 국가와 영국 등과 비교하면 2 내지 6배가 높다. 기업 물류비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물류선진국인 일본, 미국에 비해 1.3 내지 2배가 높다. 2006년 우리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8%로 미국 2.2%, 영국 2.9%, 프랑스 2.8%, 독일 1.6%보다 높다.
불법적 노사분규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외국인들이 국내투자 기피요인으로 흔히 지적하는 단골메뉴이다. 국민의 반기업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외환위기 이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기업 스스로 잘 아는 분야에만 투자하는 안정성 위주의 경영방식이 확산되면서 개발연대의 진취적인 기업가정신마저 퇴조했다.
이 같은 제반 투자부진 요인들을 조속히 제거해 나가야 국내 투자여력을 확충할 수 있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해결이 쉬운 과제부터 손을 대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우선, 정부가 투명하고도 예측가능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기업가정신이 촉진되는 환경을 개선하는 등 투자마인드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는 과감히 철폐되거나 시정되어야 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도록 국내기업이 외국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받는 규제를 가하기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동일한 원칙을 적용시켜야 한다. 예컨대, 수도권의 공장설립 등 입지규제는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수도권에 위치한 H사는 공장부지 증설 및 공장건축면적 증설 규제가 풀릴 경우 향후 수년간 누적기준으로 약 18조 원을 투자하여 4개 공장의 증설과 총 8,800명의 직·간접적인 고용창출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 제한이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비롯한 대규모기업집단 관련 규제는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각종 토지이용규제나 수도권 대기 환경규제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규제개혁, 저비용·고효율 구조, 기업가정신 제고 등을 통한 투자마인드 조성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고임금, 고지가, 저생산성 등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하도록 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의 발굴 및 육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현 성장동력 산업들이 산업 사이클상 성숙단계에 진입한 경우가 많아 차세대 유망산업의 조기 사업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지양하고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함으로써 노사관계를 선진화해야 한다.
향후에는 기업의 투자활동에 대한 시각을 규제중심이 아니라 지원위주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인세 인하와 투자세액 지원제도 상시화 및 R&D 세제지원 확대가 기업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수익률 높은 중장기적 재정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정책을 표방하고 출범을 앞두고 있는 새 정부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진작시키기 위한 대폭적인 규제완화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기업들도 새로운 수익기회를 찾아 투자를 늘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지금은 모든 경제주체가 투자확대를 통한 경제활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에 힘과 지혜를 발휘할 때다.

(hyoseung@fki.or.kr)

1) 시간당 임금+시간당으로 환산된 사용자부담 각종 노동비용
(사회보험, 세금, 지원금, 법정복리금, 퇴직금 등)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2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