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추이와 재정건전성 제고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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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론]2010-04-09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학수
- 국가채무는 말 그대로 국가가 지고 있는 빚이다. 국가의 재정수입보다 크게 계획된 재정지출을 충당하거나 예산편성 시점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재정수입 감소나 재정지출 증가에 의해 발생된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중앙은행으로부터 차입하거나 국채를 발행해서 빌린 돈이다. 국가가 진 부채에도 개인의 부채와 같이 이자비용과 원금상환의 부담이 뒤따른다. 최근 일부 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매우 양호한 수준이므로 크게 우려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나라 빚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추이는 정부의 경제운용기조의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 겪었던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성장 중심’ 및 ‘세입 내 세출 원칙의 준수’라는 정책기조로 경제가 운용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국가채무를 늘리더라도 세입 내 세출 원칙에 의해 제한적이었으며,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의해 빚이 불어나는 속도보다 소득이 증대되는 속도가 빨랐다. 따라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982년을 고점으로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이후 경제운용기조가 ‘분배 중심’ 및 ‘2004년 도입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한 재정의 탄력적 운용’으로 변화되었고 1997년 이후 국가채무는 연평균 17% 이상씩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7% 수준으로 경상 GDP가 성장했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소득증가율보다 2.5배 정도 큰 증가율로 불어났다. 세계경제를 강타한 국제금융위기의 충격을 줄이고자 현 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대 수준의 추경을 편성하면서 지난해 국가채무를 18.5% 증가시켰다. 올해에도 정부는 국가채무를 전년대비 11% 정도 확대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1997년 이후 주요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평균적으로 70% 중후반 수준을 유지해왔으나, 2009년 국제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공조의 일환으로 적자재정을 감수하며 재정지출을 확대해서 평균 90%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 현재 30% 중반 수준인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매우 양호해 보이고 국가채무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의 국가채무 비율의 평균이 높은 것은 그리스(114.9%), 이탈리아(123.6%), 일본(189.3%) 등과 같이 국가채무 규모가 경제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국가들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국가채무 통계가 국제기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과소 추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계에서 추정한 2007년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은 76.4%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또한, 1997년 이후 2009년까지 여러 OECD 국가들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낮추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덴마크·핀란드·스웨덴·스위스 등과 같은 유럽의 강소 국가들은 2009년에 40~50% 수준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하고 있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국가채무 비율도 각각 16%와 27%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들 외에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비록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70~80%대에 달하지만 1997년 이후 축소되어 왔다. 많은 국가들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을 낮추고자 노력해오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연평균 9.5%의 증가율로 매우 빠르게 확대됐다. 이러한 추이는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992년 67.6%에서 8년 만인 2000년에 135.4%로 두 배가 되던 시기의 증가율인 9.1%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의 국가채무 수준은 작성기준의 문제로 과소 추계되어 있으며 국가채무 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을 상회하며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채무의 과소 추계 가능성은 여기서 고려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1997년 이후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며 주요 국가들보다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채무를 통한 재원조달, 미래의 삶에 결정적 영향 미칠 것
앞으로도 정권마다 어려운 경제상황은 발생할 수 있으며 새로운 정부마다 반드시 하고자 하는 국책사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채무를 통한 재원조달은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기는 행위이므로 이자부담과 원금상환이라는 책임은 누가 질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다름 아닌 우리 세대가 버는 소득과 우리 후세들이 벌 소득으로 갚아야 한다.
향후 몇 년간 이러한 국가채무 추이가 지속되다 보면 정부는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게 되며, 이는 다시 민간부문을 위축시키고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된다.
진정한 정부의 비용은 세금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출이라고 프리드만이 지적했듯이, 설령 보다 많은 세금부담을 통해 재정건전성이 다소 개선되더라도 정부는 다시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고, 이는 또 다시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지며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게 할 것이다. 결국 납세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부의 비용은 세금이지만 그 세금을 결정하는 것은 재정지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재정지출 확대의 정치적 비용을 줄이고자 감세정책으로 납세자들이 인식하는 정부의 비용을 낮추면서 국가채무 확대를 통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재정환상(fiscal illusion)을 야기하는 무책임한 정부일 것이다.
국가채무가 늘어날 때마다 현재와 미래의 소비 중에서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축소된다. 국가의 주권자인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에는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국가재정을 어떻게 운용할지 세세히 알지 못한 채 우리를 대신해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공직자를 선출해야 하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생 동안 정당하게 번 소득을 언제 소비할지를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재정지출을 축소하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와 미래의 소비를 줄여서 우리가 현재 벌고 있는 소득보다 더 많이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큰 정부 중에서 어떤 정부를 선택할지 고민해야 한다.
비록 대다수의 국민들이 후자를 선택하더라도 국가와 공직자의 책무는 방만한 재정지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신중하고도 효율적인 재정지출 확대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국민들이 전자를 선택한다면, 국가와 공직자들은 재정환상이 아닌 진정한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을 통해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의 소비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을 국민들의 바람대로 확대해야 한다.(hskim67@keri.org)-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0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