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 개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경제시론] 2013-04-11 | 전경련 산업본부 산업정책팀장 이상호

- 징벌적 손해배상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을 명분으로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는 법안들이 여야 구분 없이 경쟁적으로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개정법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와 영향에 대해서는 어떠한 점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특히 논란이 많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을 중심으로 개정법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대안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거래를 규율하는 하도급법개정안은 3월 15일 현재 23개에 달하며, 이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제(이하 징벌배상)를 확대하는 법안은 9개이다. 징벌배상은 2011년 기술유용에 대해 3배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처음 도입되었는데, 이를 부당 단가인하, 부당 발주취소, 부당 반품, 감액금지 위반, 부당 결제청구, 부당한 경제적 이익요구 등에 대해서도 도입하자는 것이다. 부당 단가인하, 부당 발주취소, 부당 반품 세 가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될 만큼 정부와 여당의 추진의지가 확고한 상황이어서 기업들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징벌배상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모델법(1996)에서 ①피고의 악의적 불법행위를 ②원고가 명백하고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입증한 경우에만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참고로, 징벌적 손해배상 모델법은 각 주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요건과 산정기준을 마련할 때 참고하도록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하도급법 개정안은 고의·중과실뿐 아니라 단순한 하도급법 위반까지 대상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이 져야 할 입증책임을 대기업에 전가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징벌배상을 포함한 개정안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선, 징벌배상을 확대도입할 경우 과도한 중복제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현행 하도급법상 부당 대금 감액과 기술유용 등에 대해 손해의 2배에 해당하는 벌금과 과징금을 이미 부과하고 있다. 과징금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 운영하는 행정적 제재수단으로, 영미법계 국가에서 운영하는 징벌배상과 유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과징금,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 하도급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삼중 처벌을 가하는 것과 같다. 주목할 것은 징벌배상을 판례로 인정해 온 영미법계 국가에서도 제도 적용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은 산업에 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징벌배상 인정요건을 법률로 강화하고 배상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둘째,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도입하려는 징벌배상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징벌배상에 대한 과도한 부담으로 대기업이 공급선을 외국업체나 자체생산으로 전환할 경우 중소기업과의 거래가 감소·단절될 수 있다. 실제로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에 따르면 1차 협력사들은 징벌배상 확대 시 대기업의 거래선 변경으로 중소기업의 납품기회 축소를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셋째, 남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와 기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 다액의 손해배상과 전문 소송꾼으로 인해 소송건수가 증가할 수 있고, 대기업은 혐의가 없어도 검찰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이미지가 실추되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A기업에 따르면 자사에 납품하는 협력기업이 5,000여개 사에 이르는데, 그중 계속적 협력관계인 우량 협력기업을 제외하고 단발성 거래에 불과한 기업이 10% 내외에 달하며, 이들 기업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시 얼마든지 소송제기가 가능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거래관계 단절을 각오하고 소를 제기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해 남소우려가 거의 없다는 주장은 기업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대기업의 부당 하도급거래가 여전히 만연해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도급 관행이 대폭 개선되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 실태조사(2012.2) 결과, 하도급 조사가 시작된 ’99년엔 법 위반업체 비율이 89.3%에 달했으나 ’11년 44.9%로 44.4%p 급감하였다. 법 위반업체 비율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최상위 원사업자보다는 2~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높게 나타나고 있다. 원재료가격 인상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관행도 상당부분 개선되어, 단가 인상 신청을 한 수급사업자의 경우 92.0%가 원사업자가 전부 혹은 일부라도 수용해주었다고 응답하였다.
우리나라는 하도급거래가 계약에 기초한 사법(私法) 영역임에도 공법(公法)인 하도급법에서 과징금, 벌금 등 강력한 제재로 수급사업자를 보호하고 있다. 현행법상의 충분한 제재장치와 징벌제 범위 확대 시 초래될 수 있는 많은 부작용을 고려할 때, 징벌제 확대 논의에 앞서 기존 법의 원활한 집행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징벌제를 확대 도입할 경우, 사전 조치를 통해 제도 도입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는 하도급법 위반행위와 배상 한도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원사업자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하도급법상의 불법행위만 처벌하고, 경미한 과실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취지가 악의적 혹은 고의적 불법행위를 응징하고 예방하기 위함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소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원고인 수급사업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고, 실손해액을 초과한 징벌배상액은 국고로 귀속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kass@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