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경제시론] 2011-04-05 | 전경련 경제본부 경제정책팀장 추광호

매년 금융감독원은 전년말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신용공여 잔액이 금융기관 전체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인 계열기업군 및 그 소속기업체를 ‘주채무계열’로 선정한다. 주채권은행(주채무계열 주기업체의 주채권은행)은 이들에 대해 재무구조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 주채무계열 또는 그 소속기업체의 경영이 악화되어 여신의 부실화가 우려되는 경우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제도의 운영을 위하여 채권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운영 준칙’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동 준칙에서는 일정한 재무구조 평가기준을 규정해 두고, 이에 근거해서 여신의 부실화 우려가 있는 주채무계열을 판정토록 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는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약정을 체결토록 하고 있다(이른바 ‘재무구조개선약정’).
이 같은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 채권단 중심의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이 대기업 연쇄부도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는 계열기업군 전체를 대상으로 여신의 부실화 우려가 있을 경우 사전에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오히려 원활한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약정체결 대상을 판정하는 현재의 재무구조 평가기준은 불합리한 내용을 일부 담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며, 장기적으로는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의 존치 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일률적인 부채비율 위주의 재무구조 평가기준 개선 필요
현재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운영 준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무구조 평가기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부채비율에 따라 기준점수를 부여하고, 계열기업군별로 재무항목 및 비재무항목을 평가한 점수가 기준점수를 하회할 경우 약정체결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기준은 다음과 같은 불합리한 점이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현재의 획일화된 부채비율 위주의 평가방식은 업종별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이나 해운업종 등의 경우 고가의 항공기와 선박을 도입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여 차입금 비율이 다른 산업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현행 기준은 이 같은 산업별 특수성을 단지 비재무항목 평가기준에서 고려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약정체결 여부 판정에 있어서 이 같은 사항이 고려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현행 평가기준은 평가점수 산정 시 부채비율 평가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어, 다른 재무지표가 양호한 경우에도 약정체결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즉, 이미 부채비율에 따라 기준점수를 부여받았음에도 평가점수 산정 시 재무안정성(20%)과 현금흐름(20%) 항목에서 또다시 차입금 기준을 사용함으로써, 부채비율이 높은 업종의 경우 경영실적과 관계 없이 약정체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비율에 따라 일률적으로 기준점수를 부여하기에 차입금 비율이 높은 업종은 높은 기준점수가 부여되는데, 다시 평가점수 산정에 있어서도 높은 차입금 비중으로 인해 좋은 평가점수를 받기 어려워, 기준점수의 달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약정체결 대상이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평가점수 산정 시 최근 3개년간 영업·매출액영업이익률, 이자보상배율 등)의 평균방식에 의해 일률적인 점수를 산정하고 있는데, 이는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외부환경에 의한 경영악화를 감안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전 세계적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경영실적의 악화가 불가피하였는데, 이 같은 불가피한 외부 경영환경 변화의 경우 이를 감안하여 평가기간을 재설정하는 등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의 존치 여부 재검토되어야
한편, 이 같은 재무구조 평가기준의 개선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제도 도입의 전제가 되었던 계열기업군의 연쇄도산 위험은 사실상 사라졌다.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은 1998년부터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실제로 1998년 63조 원에 달했던 대기업집단의 채무보증 규모는 2010년말 현재 약 1.5조 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워크아웃과 유사한 상황으로 간주하고 있어, 외국자본 조달 시 금리상승으로 인해 금융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계열기업군 전체를 대상으로 체결되는 관계로, 그룹이 약정체결 대상이 되면 우량 계열사인 경우에도 자금조달 금리는 연쇄적으로 인상되는 것이다. 모기업의 경우 양호한 재무상태에도 모그룹이 재무약정체결 대상이 됨에 따라 회사채 발행금리가 민간채권평가사의 평가금리보다 0.18%p 높게 책정된 경우도 있다.
한편, 지난해 재무구조개선약정 관련 채권은행협의회의 결의에 대한 모그룹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은 인용결정을 통해 이러한 채권은행단의 공동조치가 위법하다고 설시(說示)한 바 있다. 즉 채권은행단에 의해 공동으로 추진되는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는 은행업 감독규정이나 시행세칙에 이를 허용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고, 설사 규정에 그러한 내용이 있다 해도 법률에 근거 없이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침해하므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되며, 또한 이 같은 공동조치는 독점규제법상 금지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도 도입의 전제가 되는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 거의 사라져 연쇄도산 위험은 거의 없고, 국내기업의 대외적 평가를 악화시키고 자금조달비용 부담만 가중시키며, 법률에 구체적인 근거도 없는 현행의 재무구조개선약정제도의 폐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ck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