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간 균형 저해하는 노동관련 입법, 문제점과 과제

[경제시론] 2012-09-14 | 전경련 경제본부 고용복지팀장 안종현

19대 국회 출범 이후 노동계 편향적인 노사관계 법안이 다수 상정되고 있다. 기간제·파견직·사내하도급 근로자 차별 금지, 타임오프 및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폐지,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이 대표적인 법안들이다.
우리 경제 현실을 고려하면 노동계 편향적인 법안들이 시장에서는 입법취지와는 다른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걱정스럽다. 이에 비정규직 규제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비정규직 규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간제, 파견직 등 다양한 근로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나 숙련도가 높아 정규직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늘리지 못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높은 임금과 유연성 없는 근무형태, 그리고 까다로운 구조조정 절차 등을 감수하고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체의 규모,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정규직 선택동기 등 비정규직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법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란과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부족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은 나쁘고 정규직은 좋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낳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용기간 제한 규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가 있다는 현실은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은 좋고 비정규직은 나쁘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비정규직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바탕으로 실현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비정규직 관련 규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과 근로자가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계약을 원하지만 기간제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근로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을 채용한 기업의 규모나 근로자의 비정규직 선택동기 등을 고려하면 비정규직은 기업과 근로자 간 서로의 필요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93.9%는 종업원 300인 미만의 중소·영세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예측이 불확실하고 시장에서의 진입과 퇴출이 빠르기 때문에 신축적인 인력운영을 위해 비정규직 활용이 불가피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48.0%는 스스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이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선택했다는 통상적인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국회에서 논의가 예상되는 새로운 비정규직 관련 규제들도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두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업무능력, 성과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 근로조건 면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강제할 경우 기업의 비용부담으로 인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규모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비정규직 활용을 허용하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제도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규제를 감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인해 시장에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노사관계 입법’을 기대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시장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비정규직 활용을 제한할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 등 근본적인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이루어지고, 임금을 유연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규제뿐만 아니라 타임오프제도 폐지, 근로시간 단축, 고용보호 관련 법안들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타임오프제도는 2009년 7월, 제도 시행 이후 전체 대상 사업장 중 98.8%가 제도를 도입했고, 한도준수율은 99.8% 수준을 보이면서 시장에 완전히 정착했다. 특히 주요 대형 사업장이 타임오프 도입에 합의하면서 안정적인 노사관계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임오프제도를 폐지할 경우 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노사관계가 악화되면서 노사선진화 기반이 훼손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현황을 고려하면 노사 모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근로시간 단축문제를 법과 제도로 급격하게 규제할 경우 기업경쟁력 약화와 노사관계 악화가 예상된다.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생산감소에 따른 판매차질을 겪고,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및 인건비 증가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또한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근로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노조의 실질임금 보전요구로 인해 노사관계 악화도 우려된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방안은 생산성 향상, 초과할증률 축소 등 선결요건과 함께 노·사·정이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고용보호 문제를 논의할 때는 고용보호 강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고용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여성, 청년 등 취업 취약계층이 노동시장 경직성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기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보호수준을 높일수록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시장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은 IMD, WEF 등 국제평가기관의 노동시장 순위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번 국회에서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노동시장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더 큰 경제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기대한다.

(aj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2년 9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