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시장경제

[경제시론]
2007-09-06 |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안재욱

    인류 역사를 보면 쇄국을 해서 망하거나 곤란을 겪은 나라는 있어도 개방을 해서 잘못된 나라는 없다. 가장 비근한 예가 북한과 남한이다.
    1945년 해방 후 남한보다 더 월등한 경제적 위치에서 출발한 북한은 자급자족이란 기치 아래 폐쇄경제를 고집하고 사회주의를 채택한 결과, 지금 극심한 빈곤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반면, 남한은 어떠한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육박하고 경제규모가 세계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그 주된 요인은 개방과 시장경제를 채택한 결과이다.
    서구 국가들의 역사를 봐도 그렇다. 개방을 하고 시장경제에 가까운 제도를 도입한 시기에는 번영과 풍요를 누렸지만, 문을 닫고 반시장경제적인 조치를 취한 시기에는 어김없이 곤란을 겪었으며 세계사의 주역에서 멀어져 갔다.
    유럽에서 자유무역을 선택하여 번영을 이룬 첫 번째 국가가 네덜란드다. 천연자원이 전혀 없는 네덜란드는 영국과 독일로부터 양모, 주석, 구리 등을 수입하였고, 수입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출산업을 발전시켰으며, 사유재산권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보호하였다. 그러자 네덜란드는 유럽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선박업과 조선업이 발전하였으며, 수도인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발틱해의 곡물, 해양물품, 기타 재화들에 대한 무역을 장악하였다. 그것들로 인해 자연히 금융과 보험, 그리고 관련 산업들이 더불어 발전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이 때가 바로 16세기다.
    그러나 17세기말 경부터 네덜란드는 보호주의로 돌아섰고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증가하였다. 관세와 조세가 인상되었다. 그러자 무역이 감소하였고, 노동자들이 생활비 증가를 이유로 높은 임금을 요구하여 임금이 인상되었다. 숙련노동자들과 기업들은 조세와 관세가 낮은 함부르크와 같은 새로운 도시로 이동하였다. 네덜란드에 이어 자유무역을 채택하여 부유해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네덜란드는 세계 강국의 위치에서 멀어지게 된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개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한미 FTA 협정이 지난 4월 극적으로 타결되어 국회의 비준을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이 있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FTA로 경제를 개방하면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의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우리의 산업이 파괴되고 일자리가 없어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며 그로 인해 결국 국가경제가 쇠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개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와는 달리 개방하여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두 나라 모두 잘 살게 된다.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잘 살게 되는 이유는 첫째,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값싸고 질 좋은 재화를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재화의 생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우위의 원리다. 비교우위의 원리는 어느 한 나라가 상대국에 비해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열위에 있어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품목은 있게 마련이고,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그 품목을 집중 생산하여 교환하면 서로 이익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섬유제품에 비교우위가 있고 미국이 자동차에 비교우위를 갖고 있으면 우리는 섬유제품의 생산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미국은 자동차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생산한 결과물을 교환하면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주는 또 다른 이점은 국내 기업들에게 경쟁의 압력을 가해 산업을 질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경쟁력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세탁기와 TV는 LG의 드럼세탁기와 삼성의 LCD TV이다. 한국의 가전제품이 경쟁력이 높고 외국에 많이 수출하게 된 것은 미국, 일본 등 다른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 때문이었다.
    사실 FTA는 완전한 개방은 아니다.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방법은 상대국가가 어떠한 정책을 쓰던 우리가 일방적으로 관세와 쿼터와 같은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FTA는 완전한 개방이 갖는 비배타적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지역적으로 제한하고 쌍방 간의 협약이라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자를 효율성이 떨어지는 생산자로 대체하는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는 여전히 국내경제에 경쟁을 도입하고, 소비재 가격을 낮춰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키며, 생산요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특히, 이익집단의 힘에 의한 정치적 이유로 완전한 개방이 불가능한 여건에서는 FTA가 이익집단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익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규제나 제도들을 완화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FTA를 통해 외교와 군사적인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FTA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FTA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이익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FTA가 비대칭적인 효과를 나타낸다고 해서 그에 대한 대처방안이 보호무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대처방안은 국내경제를 유연하고 신축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은 경제일수록 노동자가 어느 한 부문에서 일자리를 잃더라도 다른 부문에서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기업의 투자를 가로 막고 있는 수많은 규제들을 완화 또는 철폐하여 투자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보다 많은 일자리가 쉽게 창출되어 FTA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이 쉽게 고용되며 소득도 향상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FTA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FTA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다시 일자리를 잡기까지는 일정 기간이 걸리고 그 기간 동안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이익을 보는 부문에서 일부를 걷어 손해 보는 부문으로 보전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방법이다. 이 방법에 따른 피해그룹에 대한 보상책은 정부가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FTA를 반대하는 것은 발전적 역사를 거스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비준되지 않아 한미 FTA가 무산될 경우 경제성장과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중국, ASEAN 국가들, 남미 국가들 등 세계 여러 나라들과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고 진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나가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 인류사의 주역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소극적이고 패쇄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향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9월호 [시장경제 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