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육성 위한 미디어법 논의방향

[경제시론] 2009-06-09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류춘렬

김연아의 세계 피겨 제패는 우리 국민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었다. 그 떨림은 지금 까지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WBC 야구의 맹활약에 이은 김연아의 우승 은 이제 한국이 당당히 세계 일류의 수준에 올라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미디어법 논의 에서도 국내의 다툼에 시선을 맞추지 말고 세계적 수준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미디어산업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미디어법을 둘러싼 대립이 심각하지만 사실 관련 법안은 미디어산업 발전에 필요하 다. 여야가 대치하는 것은 일부분으로, 특히 방송법 개정안이 쟁점이 되고 있다.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 방송사와 다채널 TV의 종합편성이나 보도전문 채널에 대하여 사업 자의 시장진입을 상당히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런 규제를 완화하여 대 기업과 신문사들이 방송시장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미디어법 논란은 미디어산업을 육성하고 언론을 발전시키려는 정당한 의도에서의 찬반 논의가 아니라 당파적 이해에 따라 갈라진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이것은 여야 가 합의하여 설치한 소위‘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라는 기구의 구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한국당 등이 추천한 인사들은 대부분 정파적인 의견을 보유하고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국민’을 거론할 때 그것은 국민이 아니라 민주당의 당파적 이해를 강변하는 것이며,‘산업’을 논할 때 그것은 산업이 아니라 한 나라당의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정당 추천으로 이 루어진 태생적인 한계도 있지만,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 위원 회가 미디어법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적다.
사실 미디어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IT산업은 정보사회의 경제 시스템에서 핵심적 요소인데 그 IT산업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성장동력을 배가 시키는 분야가 바로 미디어산업이다. 대한민국은 IT산업 강국으로서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 TV·모니터, 무선통신 등 여러 제품 분야에서 세계 일류의 기술과 시장점유율 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IT산업의 발전은 하드웨어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미디어산업은 IT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제품 자체가 높은 부가가치를 보유하므로 산 업 고도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성장전략과도 일치한다. 자원이라고는 인적자원이 거의 유일한 우리나라에서 인간을 바탕으로 하는 미디어산업은 새로운 희망이다.
예전에 우리는 감히 방송영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가 요에서 시작한 한류는 드라마와 영화로 번 지면서 지구를 휩쓸고 있다.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미주, 아랍, 아프리카로까지 폭 넓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 일류의 IT 제품 안 에 세계 일류로 성장한 한류 콘텐츠를 담아 판매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시너지 를 우리 경제에 가져올 것이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수년 내 탄생 기대

그렇다면 미디어산업의 방향을 어떻게 정 할 것인가?
신문시장이 점차 감소한다는 전망은 맞 다. 인터넷 뉴스와 TV 뉴스 채널의 발달로 신문 뉴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매체시장의 확대로 광고시장에서 신문의 점유율이 떨어 지고 있다. 신문시장의 붕괴는 신문기자라 는, 사회와 민주제도 유지에 필수적인 정보 를 생산하는 전문가 집단의 소멸을 의미한 다. 방송이나 인터넷 뉴스가 양이나 질에서 신문이 생산하는 정보를 대체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신문사는 결국 미디어 시장이라 는 큰 틀 속에 포함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은 여론의 독과점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신문이라는 사회 공론장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 야 한다.
또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아시아 뉴스 채널’의 육성에도 필요하다. 앞으로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가 하나의 지역단위로 묶여질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뉴스나 기타 콘텐츠의 교류가 활 발해질 것이다. 이 지역에서 한류의 인기가 아주 높았고,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이 사 회주의적 통제가 강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적 침략의 역사가 있으므로 한국이 객관 적인 뉴스의 생산자로 부상할 수 있다. 아랍의 알자지라 방송이 아랍 강국인 사 우디가 아닌 소국 카타르에서 성공한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신문의 경쟁력과 한류의 인기를 합친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우 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야당에서 보수 신문의 지상파 방송 진출이 염려가 된다면 국회에서 합의하여 지상파 방송 사를 새로 허가할 때 유력한 진보신문에 특별히 허용하여 균형을 잡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요컨대 신문·방송 겸영은 미디어산업 발전에 반드시 필 요하다.
대기업의 방송시장 진입은 확대해야 한다. 케이블 TV의 종합편성채널이 나 보도채널, 그리고 위성방송 사업자에 대한 진입 제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단순히 영상물이나 음악, 오락 같은 콘텐츠만 판매해서는 해외 한 류의 확산은 한계에 부딪치게 되므로 대기업이 외국에서 채널사용사업자 (PP)가 되거나 또는 방송사업자가 되어 프로그램의 유통분야에 직접 참여해 야 한다. 대기업의 영상물 생산과 유통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에서는 자국 방송시장의 신속 한 성장을 위해서 외국자본의 참여를 허용하는 국가가 많다. 금융위기로 경 제가 흔들리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다. 외국에 방송사업 자로 진출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한류의 확산을 촉진하고 IT 제품의 지속적인 우위를 지켜줄 수 있는 좋은 정책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는 국내 방송시장에서 지나친 독과점을 유지하고 있 다. 다채널 TV를 도입할 때는 지상파 방송의 시장독점을 제한하려 했지만 결국 지상파 방송의 정치적 힘에 밀려서 실패하고 말았다. 지상파 방송은 영 상물을 PP에 판매하지 않고 드라마, 스포츠 등의 잠재력 높은 분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다채널 방송시장도 장악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독점은 지상파 방송사를 3개 정도 더 허가하여 완화할 수 있다. 이 기회에 새로운 지상파 방송은 오래 논의해온 소위‘외주 전문 방송 사’를 도입할 수 있다. EBS를 포함한 다섯 개의 채널 중에 네 개가 공영방송 인 국내 지상파 방송은 공영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정권 교체 때마다 논 란이 되는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와는 별도로 민영 방송사의 수를 늘림으 로써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만일 여론의 균형이 문제가 된다면 여야 합의 하에 정치적인 안배도 가능하다고 본다. 민영 미디어랩의 도입이 임박했으 므로 차제에 공영방송은 광고를 하지 않고 전적으로 시청료나 국가 예산으 로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정치는 짧고 국가는 길다. 현재의 여야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미디 어법 내용은 대부분이 미디어산업의 성장에 필요하다. 당파적인 이해가 걸 린 작은 부분만을 정치적으로 푼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수년 내로 탄생할 것을 믿는다.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 소식이 우리 방송망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cryu@kookmin.ac.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9년 6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