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법, 최대한 많은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해야

[경제시론] 2016-03-02 | 산업본부 추광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만성화된 경기부진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양상을 바꿔 놓았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은 주로 부실기업이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부실이 드러나지 않은 정상기업들도 사업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거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데 매진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주요 그룹간 사업부문 빅딜은 그 좋은 예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되는 기업들의 선제적 사업재편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었다. 즉 부실이 드러난 이후 채권단 혹은 정부 주도로 추진되었던 사후적·타율적 구조조정만으로는 기업과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은 기업의 사전적·자율적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원샷법은 기업이 빠른 시일 내에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우선 상법상의 각종 절차가 간소화되어, 주주총회 특별결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재편의 범위가 확대되고, 주총소집 기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 등 관련 절차가 단축된다. 공정거래법상의 걸림돌도 일부 완화된다. 사업재편계획 제출시 기업결합심사를 동시에 신고한 것으로 간주되고, 상호·순환출자 해소기간 연장, 지주회사 규제의 적용유예 등 특례가 주어진다. 세제혜택도 있다. 중복자산 처분시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가 이연되고 등록면허세의 절반이 감면되는 등 사업재편에 따른 자금부담이 일정 부분 줄어든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라도, 이를 활용하는 기업이 적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현재 원샷법은 수혜대상을 과잉공급 업종으로 한정하고, 구체적인 과잉공급 판단기준은 하위법령에 위임하고 있다. 성장보다 생존이 더 중요해진 기업현실을 감안할 때, 어느 기업의 구조조정이 더 시급한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찌 보면 한가로운 일일 것이다. 향후 시행령 제정시 과잉공급 업종의 판단기준을 폭넓게 규정하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많은 기업들이 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기업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정부가 법 시행 전까지 여러 차례의 설명회를 계획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잉공급 업종에 속한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관 공동으로 구성된 ‘사업재편계획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위원회는 경제원리에 입각한 공정한 심사로 심의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사업재편을 꼭 해야 하는 기업이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신청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기업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원샷법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업재편을 위한 기업지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선제적 사업재편과 부실정리를 위한 구조조정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수요 변화에 따라 자원을 재배치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이것이 지연될 경우 부실이 누적되어 오히려 기업 파산과 대량 해고가 일어날 수 있다. 사업재편에 대한 지원은 궁극적으로 우리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것이며, 기업, 나아가 경제 전체에 혁신을 불어넣는 유용한 도구다. 원샷법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시점에 원활한 사업재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