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의 전제조건

[경제시론] 2004-02-17 | 허찬국 허찬국

대부분의 전망기관들은 우리나라 수출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출의 지속적 증가는 제조업 생산의 호조로 이어지게 되고 또한 이는 바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의 과거 20여년의 경험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망기관들이 제시하고 있는 시나리오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즉, 1980년대 이후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수출과 주요 내수경기 지표들과의 관계가 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수출증대는 설비투자와 약한 상관관계를 보이나 수출과 고용과는 상관관계가 이보다 더 약하게 나타난다. 반면 설비투자와 고용은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는 수출호조가 고용증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투자증대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수출과 고용과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출과 관련성이 가장 큰 제조업의 역할이 변했기 때문이다. 즉, 생산이나 수출에 있어 제조업의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의 고용비중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외환위기 이후 그 감소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고용유발계수가 큰 섬유산업은 쇠퇴한 반면 고용유발계수가 낮은 전기전자산업의 비중이 커진 제조업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고 둘째, 빠른 자동화로 인해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전체생산액 비중은 크게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장 수와 고용이 빠르게 감소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규모 사업장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우려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50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이 전체 제조업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 약 32%에서 2002년에는 18%로 낮아졌다. 하지만 대규모 사업장이 우리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줄지 않고 있다. 이의 증거는 최근 산자부가 발표한 작년 제조업 노사분규의 경제적 피해를 추정한 자료에서 볼 수 있다. 2003년 근로손실일수가 전년에 비해 7.4%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대형사업장에 파업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분규에 따른 생산 및 수출 차질액은 전년 대비 각각 45.3% 와 73.2% 늘었다고 한다.

자동화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기계를 쓰는 것으로 잔여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나 사업장의 자동화 속도는 사람을 쓰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고 경제적인가에 달려있다. 즉, 임금이 높을수록, 그리고 사람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많을수록 자동화 속도는 빨라진다. 근래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높은 임금상승률과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 지나치게 높은 고용보호제도 등은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자동화에 더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고, 아울러 해외로의 생산기반 이전을 가속화 시켰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단순히 일부 기업, 일부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넓게 확산되고 있어서 전체적 고용상황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높은 수준의 인건비를 감당하고도 이윤을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출현하여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의 제고가 필수적이다. 결국 활발한 투자가 요구된다는 것이며 여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규제들을 선제적으로 완화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국내에서 사람 쓰는 데에 수반되는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금안정, 원활한 인력조정을 가능케 하는 제도개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경제의 고용창출역량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일자리 창출의 전제조건은 기업의 투자활성화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안정 그리고 정부규제의 완화가 선결과제다.

허 찬 국(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