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경제, 새해 경제·경영 환경 및 과제

[경제시론] 2009-01-12 | 전경련 경제본부장 황인학

글로벌 금융위기의 확산으로 전세계 실물경제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우리 경제도 유례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금번 위기는 과거 석유위기나 외환위기와는 달리 전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위축속도 또한 빠르게 진행되면서 침체의 골이 깊어 조기에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금융과 실물의 복합 불황으로 이어져 2~3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으며, 올해가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2007년 5.0%에 비해 크게 낮아진 3.7%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나, 올해는 1~2%대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올해는 경제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경제 예측의 전제가 되는 구조변수가 바뀌고 있는 중이고, 세계 경제성장률, 환율, 유가 등 외생변수들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또한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는 기업들도 여러 시나리오를 예상하여 비상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느 기업도 안심할 수 없는, 글로벌 생존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위기극복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잘 준비하고 대처한 자에게 위기는 기회로 작용하는 만큼, 우리 기업들이 지금의 대규모 글로벌 구조조정 시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대외여건 전망

2009년 세계경제는 세계적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유례없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별로 보면 선진국의 경우 미국, 일본, 유로 등 선진국들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주택시장 침체 지속, 고용여건 악화 등에 따른 소비 위축이, 유로지역은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신용경색이, 일본은 엔화강세와 디플레이션 압력 등이 경기하방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고성장을 구가해오던 개도국들도 올해에는 큰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선진국 금융기관의 de-leveraging 여파로 지금이탈이 커지면서 신용경색이 확산되고,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교역량 위축으로 수출여건도 크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9일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글로벌 경제전망 2009’에 따르면, 전세계 무역량은 작년에 6.2% 늘었지만, 올해는 2.1% 감소하고 이에 따라 개도국의 경제성장률도 작년의 6.3%에서 올해는 4.5%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특히, 세계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하면서 우리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국경제는,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인 5~6%대로 성장률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경기침체의 폭은 넓고 골은 깊은 데다 불확실성 또한 높아 언제쯤 경기가 회복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참고로 600대 기업에게 경기회복 시기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약 70%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볼 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하강 국면에서 회복되는 시점까지 평균 3~4년의 기간이 소요되었으며 IMF, 세계은행 등 주요 국제기구들도 추세적인 성장회복 시기를 2010년 하반기에서 2011년경으로 추정한 결과를 놓고 보면, 이번 경기침체는 일반적인 기대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한편, 금융위기 여파로 달러화와 유가 등 경제변수들이 지난해 사상 최고의 변동성을 보임에 따라 올해 이들 가격변수에 대한 전망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초 900원대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1,500원선을 기록했고, 2008년 11월 24일에는 연중 최고치인 1,513원까지 올랐다.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이 2008년 연평균 환율을 2007년의 929원보다 소폭 절상된 910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 환율은 1,102원으로 크기는 고사하고 방향성조차 예측하지 못하였다. 국제유가 또한 지난해 연초에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2007년의 배럴당 68달러보다 7.8% 상승한 74달러를 예상하였으나, 실제로는 지난 7월 배럴당 140달러대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제3차 오일쇼크의 우려까지 낳다가, 하반기 들어 세계 실물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현재 30달러대 중반까지 급락하였다.
올해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실물경제의 침체 정도에 따라 환율과 유가는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일 것이다.
올해의 환율에 대해 대다수 경제연구소들은 미국의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강세, 엔화에 대해서는 약세기조를 지속하고,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100~1,200원대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의 변동성이 크고, 미국의 경상?재정적?악화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될 경우 달러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환위험 관리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유가는 석유산업연구소(PIRA),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 등의 전망에 의하면 경기침체에 따른 석유수요 감소의 여파로 올해 두바이유 가격은 55~66달러 선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경제 전망

지난해 하반기 이후 IMF를 비롯하여 경제전망기관들은 발표할 때마다 세계 경제성장률과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는 추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2009년 경제성장률에 대해 3%를 언급하였으나 이는 정책의지가 담긴 목표치로서 의미가 있고, 최근 발표되는 경제연구소들의 전망치는 1~2%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플러스 성장을 한다면 그나마도 다행이라 할 정도로 올해 경제전망은 어둡다. 구체적인 전망치는 기관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는 GDP성장률에 대해 세계은행과 같은 입장에 있는 한국은행 자료를 중심으로 올해 경제를 살펴본다.
12월 11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중 GDP성장률은 2008년(3.7%)보다 크게 하락한 2.0%를 기록할 전망이며, 이는 세계은행이 전망한 수치와 같다. 경기를 상·하반기로 나누어 보면, 상저하고(上底下高) 현상을 보여 전년동기 대비 GDP성장률은 상반기 0.6%에서 하반기 3.3%로 성장세가 다소 확대될 것이나 성장 모멘텀은 대체적으로 미약할 전망이다.
민간소비는 실질소득의 증가세 둔화, 고용사정 악화, 자산감소 효과, 가계채무부담 증대 등으로 부진이 심화되어 지난해 1.5%에서 올해 0.8%로 낮아지고, 설비투자 또한 세계경제성장세 둔화,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감소세가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건설투자는 전년의 기저효과와 정부의 SOC투자 확대 등에 힘입어 다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수출은 세계경기 부진에 따른 교역신장률 둔화로 2008년보다 증가세가 낮아지고, 상품물량 기준으로는 2008년 3.6%에서 올해는 1.3%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다행인 것은, 작년에 경상수지가 약 45억 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외환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었는데 금년에는 다시 흑자로 돌아선다는 사실이다. 올해 경상수지는 100억 달러(정부발표)에서 220억 달러(한은발표)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듯하다. 이는, 수출 둔화에도 불구하고 유가하락 및 국내수요 위축의 영향으로 수입액이 더 크게 감소하면서 상품수지가 개선되고, 서비스·소득·이전수지의 적자규모도 소폭 축소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소비자물가 상승률(연평균 기준)은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및 민간 소비 여력의 위축으로 2008년 4.7% 수준을 크게 밑도는 3% 내외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인해, 2009년중 취업자 수 증가규모는 2008년 14만 명에서 크게 줄어 4만 명(한은 발표)에서 10만 명(정부 발표) 내외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일자리 부족, 고용불안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정부의 정책과제

“지금 이 단계에서 가장 큰 위험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이다(The greatest risk at the moment is that governments will do too little to fight the slide).”
이는 작년 12월 초에 ‘Business Week’가 강조한 것인데, ‘선제적으로(preemptive), 충분하고(sufficient), 단호하게(decisive)’대처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일치한다. 지금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재정, 감세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제개편안이 통과되었고, 경제의 급속한 위축속도를 감안하여 올해 상반기에 재정의 조기집행 비중을 높여 집중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예산이 집행되고 있음은 다행이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위기상황에서는 어느 나라가 먼저 불을 끄는냐가 경기회복 이후 경제 주도권을 잡는 데 중요한 관건인 만큼 단기적인 재정적자를 염려해서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피하지 말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추경편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재정투입 과정에서 미래의 생산적 용도로 잘 흘러가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실물부문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 국제적인 신용경색과 더불어 은행의 재무건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업금융시장이 기능부전에 빠졌으나, 올해는 이러한 문제가 점진적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기업금융시장의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며,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기업과 가계대출에서 추가부실이 발생하면서 신용경색 현상이 불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은행이 사전에 충분한 자본확충에 나서도록 감독해야 한다. 특히, 우리 경제는 수출을 확대하여 무역수지의 흑자기조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큼, 수출입금융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는 한편으로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경기변동 요인이 아니라 제도·정책적 요인에 의해 일자리 창출이 저해되거나 실업이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임으로써 노동시장의 신규진입과 재취업이 촉진되도록 하는 한편, 사실상 비정규직퇴출법으로 작용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은 한시라도 빨리 손질해야 할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만 2년 시점인 올해 6월 말이면 사용자도 근로자도 원치 않는 대규모 실업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개혁은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를 혁파하고,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정책들이 차질없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기업의 과제

지금은 모든 산업현장에서 글로벌 생존게임이 벌어지고 있어 어느 기업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9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사가 파산위기를 겪고 있으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꼽히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마저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할 정도이다.
그러나, 금번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세계시장이 새롭게 재편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으면 강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취지에서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미국의 2001~2002년 경기침체기 동안 1,300여 개 기업의 전략과 행동, 그 결과를 관찰한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불황기에 매출액 기준 상위 25% 기업 중 약 40%가 퇴보하였지만 불황 이전에 별볼일 없던 하위기업의 약 15%가 선두로 약진했다고 한다. 이는 불황이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들 성공기업의 공통점은 재무적 건전성을 바탕으로 불황기 이전에 미리 원가절감 등으로 힘을 비축하고, 막상 불황이 닥치면 마케팅, 광고, R&D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한발 앞선 경영 시스템과 전략적 유연성에 있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노사안정이 관건이다. 급격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업과 노조는 임금 동결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고용조정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임금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우리 기업의 생존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한 제조업 임금은 OECD 회원국, 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미국을 100으로 볼 경우 대만 72.2, 싱가포르 56.0, 홍콩 37.0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156.7에 이르는 실정이다.
지금 대내외 경제상황이 어렵다 하나, 주어진 여건은 어느 나라의 어느 기업에나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지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재무적 건전성도 높였기 때문에 노사관계만 안정된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리 기업과 우리 경제는 과거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한 단계씩 도약해왔던 경험이 있다. 이번의 대규모 글로벌 구조조정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잘 대처해서 극복한다면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9년 1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