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경쟁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

[경제시론]
2007-09-06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박규원

    최근 경영권 방어수단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하고 있으며, 다른 편에서는 경영권 방어수단 활용을 제한하는 것이 최근의 움직임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경영권 방어수단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가 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M&A 제도에 있어서도 각 나라가 역사적 경로 의존성을 가지고 자국의 현실에 맞게 최적화된 제도를 정착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경영권 공방제도가 균형을 이루는 예

    특히, 선진화된 M&A 제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미국과 영국의 경영권 방어수단 활용 상의 공통점은 찾을 수 없다. 다만, 경영권 공방제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는 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경영권 방어수단 자체만을 두고 논의하기보다는 경영권 경쟁시장이 얼마나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느냐에 무게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각국이 갖는 경영권 공방제도의 균형을 위해 취하고 있는 제도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과 영국의 경영권 공방제도의 특징은 한 마디로 공격자와 방어자간 힘의 균형이다. 미국은 경영권을 두고 공격자와 방어자가 필요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고 있다. 공격자는 큰 제약을 받지 않고 해당기업은 이사회의 결정만으로도 방어수단 사용이 가능하다.
    반면, 영국은 공격도 어렵지만 방어도 어려운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매수자에게는 의무공개매수제도(해당 기업 주식 30%를 취득하게 되면, 잔여주식 전체를 의무적으로로 매수해야 함) 등 강력한 매수 규제를 하고 있으며, 방어 측의 이사회는 주주총회의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할 수 없다. 즉, 미국은 창과 방패의 활용이 자유롭고 영국은 창과 방패의 활용이 모두 제한되는 형태이다.
    EU 국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어 영국과 같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보유함과 동시에 차등의결권주식 등 다양하고 강력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경영권 공방제도에 있어서 방어자 측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기업인수지침(Directive on Takeover Bids)을 제정하여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여 영국식의 균형적 M&A 법제를 만들고자 시도하였다. EU의 기업인수지침의 핵심사항인 제9항과 제11항에서 각각 ‘Board-Neutrality or Anti-frustration Rule’과 ‘Breakthrough Rule’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수단을 채택하기 이전에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인수합병의 시도가 있는 동안에는 차등의결권, 의결권 상한과 같은 특수한 의결권구조와 협약의 작동을 제한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들 항목들에 대해 자국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EU 회원국들의 반대의견이 높아 Portugese Compromise를 통해서 의무준수사항이 아닌 각 회원국들의 선택사항으로 처리함으로써 기업인수지침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다.
    또 하나의 글로벌 추세라고 볼 수 있는 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은 미국식의 경영권 공방제도를 지향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장치의 존재와 1주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으며, 피라미드출자, 상호출자, 차등의결권 등의 자본적 수단에 의한 의결권구조와 자본구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영권 방어장치의 과도하고 광범위한 사용으로 경영권 시장이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 이사회의 선관주의의무가 필요하다고 제시함으로써 경영권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우,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맞춰 2005년 신회사법을 제정하였으며, 현재는 미국식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대부분 수용하였고, 기업들은 미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어수단으로 활용되는 이른바 독약조항(Poison Pill)을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격자에 대한 매수 규제, 즉, 의무공개매수제도, 외국인 주식취득한도 제한 등을 IMF 이후 모두 폐지한 반면, 경영권 방어수단은 극히 제한되어 공격자에게 편향된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형태의 경영권 경쟁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공격자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법제도 개선 필요

    EU가 지침을 통해 과도한 경영권 방어기제 활용을 제한한다는 단면을 보고 마치 경영권 방어수단을 제한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EU의 지침이든 OECD의 기업지배구조원칙이든 간에 이것이 말하는 것은 공정한 경영권 경쟁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영권 시장에 있어서 공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짜여진 법제도를 공정성이 찾아질 수 있도록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 이것이 결국 M&A의 순기능을 촉진하고, M&A를 활성화시키는 길이며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9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