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중심 금융시스템 구축으로 경제 전체의 업그레이드 계기 되어야

[경제시론] 2007-07-10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윤창현

자본시장통합법장 정식명칭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이다. 줄이면 자금법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관련한 여러 개의 법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가 강조되어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이름이 법의 정식 명칭처럼 쓰이고 있다. 원래는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 로 명명되었는데 이를 약자로 만들어보니 금자법이 되었다. 이는 과거에 인기리에 상영된 한 영화의 제목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순서가 바뀌어 새로운 명칭이 지정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금융에는 은행이라는 기관이 예금으로 자금을 조성하여 대출로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중심금융, 곧 간접금융시스템이 있고, 반대로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들이 유가증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직접금융시스템이 있다. 어느 제도가 더 좋다 나쁘다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전 세계적 조류는 시장중심금융, 곧 직접금융이 점점 더 보편화·일반화되는 추세이다.
기관중심의 간접금융방식에서 은행이 예금을 받아서 자금을 조성한 후 이를 대출을 통해 운용하는 것을 금융중개(Financial Intermediation)라고 하는데, 바로 이러한 금융중개 를 통한 간접금융시스템이 퇴조하는 현상을 금융의 脫중개화(Disintermediation)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IMF 사태 이후 은행중심금융이 오히려 더 활성화되고 비중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법은 결국 이러한 부분을 바로잡고 전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금융산업에서도 시장중심의 방식이 보다 일반화되어 가면서 시장의 영역과 시장의 논리가 점점 더 넓어지고 확장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크게 네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통한 금융투자상품의 다양화, 금융투자업을 6가지로 분류한 후 이 모두를 한 기관에서 겸영할 수 있도록 만들기, 기능별 감독체계의 확립, 그리고 투자자보호제도의 선진화 등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포괄적 정의 부분과 겸영가능 부분이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독일과 일본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륙법 체계를 주로 빌려왔다. 이 법체계에 따르면 어딘가에 근거조항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도입하거나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포지티브 시스템이고, 열거주의 방식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의 근거를 어디엔가 마련하고 허가해 주어야 한다. 이러니 관료들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허가를 하고 근거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일단 시작이 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영미법은 불문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이 법체계 하에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없으면 일단은 할 수 있다. 소위 네거티브 시스템이고, 포괄주의 방식이다.
이러한 법체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전술한 직접금융 분야이다. 직접금융은 기업이 유가증권이라는 '물건(주식이나 채권 등)' 을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방법을 통해 기업으로 자금이 유입된다. 물론 투자자가 이 물건을 사야만 돈이 기업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좋은 회사가 만든 유가증권은 좋은 대접을 받고 반대로 안 좋은 회사가 만든 유가증권은 홀대를 받는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물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 동시에 자본시장을 통해서도 평가를 받는다. 시장시스템 내지 감시시스템이 사방에 존재하는 셈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하는 과정에서 풀빵을 찍듯 구조적으로 동일한 유가증권만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구조를 가진 금융투자상품을 선보일 수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유가가 오르면 이익규모가 커지고 유가가 떨어지면 이익이 줄어드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만일 이 회사가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데, 유가가 오르면 금리를 많이 주고 유가가 떨어지면 금리를 적게 지급하는 신종채권을 발행한다면 어떨까. 이 기업이 이러한 채권을 발행한다면 발행 자체로 인해 리스크관리 효과가 생긴다. 유가가 떨어질 경우 이익이 줄어드는데 다행히 금리도 적게 지급되니까 비용이 줄어든다.
사들이는 입장은 어떤가. 매일 똑같은 채권만 사는 것 보다는 가끔은 이런 신종채권을 사들임으로써 유가상승시 추가이익을 노릴 수 있게 된다. 만일 이런 채권의 조건도 잘 정하고 어떤 투자자가 좋아할지 잘 알고 있는 금융회사가 있다고 할 때 네거티브 시스템 하에서 이 회사는 당장 이런 채권을 발행시키고 소화시키면서 금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포지티브 시스템의 경우는 다르다. 발행근거가 없다면 이런 채권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실제로 주가가 뜨면 금리를 더 주는 주가지수연동채권(ELS)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 도입근거를 마련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자본시장통합법은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다. 이 법의 3조를 보면 금융투자상품의 정의가 나온다. "물건 또는 권리의 취득으로 인하여, 지급하였거나 지급하여야 할 금전 또는 그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의 총액이, 당해 물건 또는 권리의 처분 혹은 그 밖의 방법으로 회수하였거나 회수할 수 있는 금전 등의 총액을 상회하게 될 위험을 부담하면서,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발행인 혹은 거래상대방에게 현재 혹은 장래의 특정시점에 금전 등을 이전하기로 약정함으로써 갖게 되는 권리." 이를 줄여 보면 원금의 일부나 전부 혹은 원금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대상은 다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것이다. 이제 금융투자회사(증권사, 투신사, 선물회사, 자문사 등의 법적 명칭이 이렇게 바뀐다)가 무슨 상품을 만들어도 법적 근거가 있게 되는 셈이다.
증권 장내파생상품, 장외파생상품으로 구분되는 금융투자상품은 이제 모든 금융상품 중에서 예금과 보험상품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품은 다 금융감독의 대상이고 문제가 생기면 감독당국에 의해 제재가 되므로 그야말로 '아무거나' 거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이 법은 금융투자업을 매매, 중개, 자문, 일임, 집합투자, 신탁업 등으로 구분한 후 이를 한 회사에서 다 영위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하였다. 믈론 차단벽이 필요하다. 겸영 여부와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되 철저한 사후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하면 문제의 여지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겸영을 통한 대형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했다는 점도 이 법의 중요한 공헌일 것이다.
이제 금융산업에 있어서 시장중심 금융구조는 점점 더 확실하게 정착되어 갈 것이다. 시장중심의 논리가 금융을 지배할 것이고 향후 엄청나게 쏟아지게 될 금융투자상품들을 매개로 한 직접금융은 우리 곁에 더욱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시장중심의 사고와 규율체계, 그리고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투자자들도 이제 금융투자상품의 옥석을 가리는 안목을 길러야 하며 금융투자회사들도 진정한 경쟁을 통해 확실한 영업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곧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이 확실하게 구축됨으로써 금융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7월호 [시장경제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