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의 교훈

[경제시론] 2009-09-07 | 전경련 경제본부 노사정책팀장 고용이

- 노사상생 문화의 정착과제 -

77일에 걸친 쌍용차 노조의 평택공장 불법점거 파업이 다행히도 큰 불상사 없이 끝나기는 했지만 쌍용차 사태는 사회적으로 큰 후유증을 남겼다.
파업으로 인한 직접 생산손실만 자동차 1만 4,590대, 3,160억 원에 이르며, 1, 2차 협력업체 중 부도·법정관리 기업이 23개사, 휴업 중인 기업이 101개사에 달했다. 파업은 끝났지만 쌍용차가 앞으로 치러야 할 회생절차는 더욱 험난하다. 장기파업으로 인한 부품업체의 부도, 영업망 붕괴, 운영자금 고갈, 신용도 저하, 勞-勞 불신 등 쌍용차 회생의 저해요소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노동관행에 대한 근본적 성찰 필요
쌍용차 사태는 노사 당사자는 물론 협력업체와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내재되어 있는 노사정의 잘못된 관행과 노동관련 법·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큰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 전투적 노동운동 방식
우리의 잘못된 노동관행 중 하나는 전투적 노동운동 방식이다. 불법점거가 이루어진 평택공장에서는 볼트·너트, 화염병, 쇠파이프 등 불법시위용품이 2만 7,804개, 부상당한 경찰인력도 140명에 달했다. 노동계는 이런 전투성이 절박함에서 나온 자구책이라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위현장 ‘시선끌기용’이라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노동계의 시선끌기 전략이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행태에 힘입어 국민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로 인한 사회적·국가적 손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불법점거 노조원들이 경찰을 폭행하는 장면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면서 해당 기업의 브랜드가치는 물론, 더 나아가 국가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얼마 전 21년 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태미 오버비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노동자들이 외치는 ‘경영진 타도’, ‘회사를 죽이자’ 등의 구호는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굉장한 두려움을 주고 있다. 이런 과격한 노동쟁의가 한국의 진면목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 문제만 개선된다면 한국의 투자 매력도는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제3자 개입으로 인한 갈등의 심화
노사당사자 외에 제3자가 개입하여 갈등을 심화시키는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 금속노조, 민노총 등 상급노동단체는 물론 좌파 시민단체 등은 산하노조와 현장조합원의 어려움을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노동계는 한 세미나에서 “77일 동안의 쌍용차 노동자 공장점거 파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웅적이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공장전투를 지원하는 움직임은 미약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파업 현장에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연대투쟁이라는 미명하에 당연시한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에 개입한 사노준(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위), 사회주의노동전선 등 ‘연대투쟁 세력’의 면면을 보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쌍용차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좌파단체들이 개입해서 노사갈등을 정치·사상 갈등 문제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은 현장조합원이 어떻게 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불법행위의 용인
산업현장에서 불법이 용인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쌍용차 노조가 생산시설을 점거한 행위는 불법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불상사를 우려하여 공권력 투입을 주저함으로써 사태 장기화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노사관계가 불법과 파행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법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2006년 국내와 홍콩에서 불법 폭력시위를 벌인 한미 FTA 반대 시위대는 미국 원정시위에선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폴리스라인을 넘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집회는 현장체포는 물론 막대한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묻는다는 것을 원정시위대가 사전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법만 잘 지켜져도 GDP가 1% 포인트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무려 9만 4,0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다.

- 임시방편적 노무관리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노조 달래기에 치중해 온 사측의 임시방편적 노무관리 관행도 바꿔야 한다. 쌍용차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고, 수년간 적자상황임에도 매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 사측 역시 노조 달래기에만 치중하면서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2000년 이후 16차례에 걸쳐 파업이 있었지만 사측은 생산차질을 우려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정공법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당장의 파업사태 해결에만 주력했다. 결국 ‘노조가 밀면 사용자는 밀린다’는 인식을 노조에 심어주게 되었고, 파업만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결론으로 이끈 것이다.

- 까다로운 고용조정 요건 및 대체근로 규정
현행 노동관계법도 개선이 시급하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가시화된 이후의 인력조정은 노사 모두 양보하기 어려워 결국 극단적인 노사마찰로 비화되기 쉽다. 적시에 인원조정을 하지 못한 쌍용차는 전체 종업원의 37%를 해고하려 했고, 근로자와의 갈등 격화로 결국 77일 간의 불법점거 파업이 일어나게 됐다.
고용조정의 요건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라 ‘경영상의 필요’였더라면 기업이 극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쌍용차 사태에서와 같은 대규모 해고 및 극단적인 무력 충돌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 예방적 직장폐쇄 조치가 불가능하다 보니, 노조원에 의한 공장 불법점거가 발생해도 사측이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고, 파업시 대체근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파업기간 중에는 공장을 가동할 수가 없다. 따라서 노조의 불법점거가 예견되는 경우에는 예방적 직장폐쇄를 가능하도록 하고,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하여 조기정상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이번 쌍용차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대립적 투쟁관계에서 상생의 협력적 노사관계로 대전환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측은 노사간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하며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 등 원칙에 입각한 노무관리를 시행해야 한다. 노조는 기업이 없으면 근로자도, 노조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하고 경영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와 불법투쟁을 지양해야 한다. 특히 조합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활동가의 입지 강화와 투쟁동력 확보를 위한 상급단체의 무분별한 투쟁전략에 개별 기업이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불법행위에 대해 즉각적이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불법은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산업현장에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한편,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

(go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9년 9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