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혁과 경제활력 제고

[경제시론] 2008-11-12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경엽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1,000선이 붕괴되고 9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 1,5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져 장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국내외 유수기관들의 전망에 따르면, 내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4%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2%대의 성장률도 감수해야 한다. 극심한 경기침체가 예견되자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과 건설업 지원방안을 발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리의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기업의 부채비율, GDP 대비 기업이익,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 등 금융 건전성 지표들이 과거와 달리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또한 현재 외환보유액은 약 2,400억 달러로 IMF 기준의 적정 외환보유액 1,400억 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의 순유출, 유동외채 상환 등을 감안해도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이기에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연일 요동치고 있는 것인가?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극도로 고조되어 있는 탓이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의 과잉반응은 당연한 결과라지만 외국인마저 한국의 투자리스크를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가들보다도 높게 보고 있는 것이다. 대내외 환경의 큰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근시안적 시각으로 내놓은 정부의 각종 금융 및 외환 정책도 시장의 불안심리를 더욱 자극하는 격이다. 연초에 경상수지 흑자전환을 위해 고환율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원화가치의 하락을 예견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매도를 불러왔다. 이후 원유와 원자재가격 폭등으로 물가압력이 거세지자 수십억 달러를 풀어 인위적으로 환율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대규모의 시장개입의 약효는 달러화의 글로벌 강세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소국개방경제로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정부의 잦은 시장개입이 오히려 환율의 변동성을 키웠고, 결국 원화를 환투기 세력의 좋은 표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했을 때 올바른 대책이 세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제점을 꼼꼼히 살피고 원론에 충실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이 집행되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글로벌 정책공조가 가시화됨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갈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유동성 해소를 위해 국제공조를 강화하고, 국내은행 외채에 대한 지급보증, 총액출자한도 확대, 지급준비율 인하, 추가 금리인하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어 국내금융시장도 안정될 전망이다. 이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로 파급되어 나타날 세계 경제의 침체에 대비할 때이다.
한 가계이든 국가든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많은데 이를 갚지 못하면 파산하게 된다. 이러한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국가는 씀씀이를 줄여 수입을 억제하고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고금리와 고환율 정책을 통해 소비와 수입을 억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우리의 내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발생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엄청난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정책보다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확대하는 더욱더 적극적인 정책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세제개편 통해 극복해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취적으로 대응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정부가 제안한 세제개편안의 빠른 국회통과가 요구된다.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본 정책방향이 현재의 금융위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정책기조를 더욱 강화할 때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 대부분의 국가는 해외자본 유치, R&D 투자 확대, 성장동력 확충 등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국가의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2008년도 세제개편안이 세계 경제의 침체를 예견하고 수립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하기에 적절한 방향으로 편성되어 있다. 2008년도 세제개편안은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그리고 R&D 투자와 중소기업 지원 확대 등 성장동력 확충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의 재정정책을 돌이켜 보면 이번 세제개편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지난 정부는 소외계층의 복지를 개선하고 정부가 나서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데 정책목표를 두어 왔다.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건·복지와 지역균형발전 등 소득재분배를 위한 분야에 지출을 대폭 확대하였다.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국가채무는 연평균 약 23%씩 증가하여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33.2%에 달하였다. 재정건전성 악화와 국가채무의 빠른 증가는 조세부담률이 상승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둔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저성장이 지속되다 보니 일자리 창출이 부진하고 소득분배와 양극화는 더욱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서민의 복지를 개선하겠다는 이번 세제개편안의 목표는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들의 의식도 변하고 있다. 최근 전경련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이번 감세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율 인하는 79.6%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양도소득세 부담 완화는 63.3%, 법인세율 인하는 59.8%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행 세율(10~50%)을 소득세율 수준(6~33%)으로 낮추는 상속·증여세의 개편에도 53.5%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부정적인 평가 36%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이러한 의식변화는 저성장이 지속될 때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계층이 저소득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지는 성장이 지속되고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창출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결과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초래된 세계 경제의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정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감세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그러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출은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매우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재정지출을 성급히 확대하기보다는 재정지출구조를 성장 친화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여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국가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 세제개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세제개편의 효과는 중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울수록 채택하기도 어려운 정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국회는 세제개편안의 빠른 통과를 통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국가번영에 기여한 정치인들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11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