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상법 주요 쟁점 규정의 문제점

[경제시론] 2011-05-20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이철행

지난 3월 11일 국회 본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이 4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내년 4월 12일부터 실제 적용될 예정이다. 개정 상법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규정은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와 ‘회사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준법지원인’이다. 이들 규정은 취지는 좋을지라도 우리 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도입되어 향후 이사회 처리안건이 폭주하는 등 정상적인 기업경영활동에 많은 지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개정된 조항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사와 회사 간의 거래’ 규정은 해당 회사가 ① 이사(등기이사 본인 및 등기이사가 CEO로 있는 회사), ② 주요 주주(1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법인, 개인, 개인이 CEO로 있는 회사}), 이사·집행임원·감사의 선임과 해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주{기업총수}), ③ 이사·주요 주주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당해 본인 및 본인이 CEO로 있는 회사), ④ 이사·주요 주주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당해 본인 및 본인이 CEO로 있는 회사), ⑤ ①~④에 해당하는 자가 단독 또는 공동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 및 그 자회사, ⑥ ①~④의 자가 ⑤의 회사와 합하여 의결권 있는 주식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 등과 거래를 할 경우 사전에 이사회 특별결의(재적이사의 3분의 2 이상)를 받아야 한다. 신설된 ‘회사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는 현재 또는 장래에 돈이 될 수 있는 회사기회를 이사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려면 이사회 특별결의를 얻어야 한다. 이사회 특별결의를 받지 않고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이사 및 승인한 이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준법지원인’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일정규모 이상의 상장회사는 변호사, 5년 이상의 법대교수 등 법률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준법지원인으로 임명해야 한다.

정치권의 대표적인 ‘제식구 챙기기’ 법안으로 비판을 받았던 개정 상법이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할 분야는 다음과 같다.

우선, ‘회사와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과 관련하여 실제 자기거래 승인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기업들의 이사회 개최회수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래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에서는 적용대상이 종래 이사에서 이사, 이사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이사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50%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 및 자회사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 법무부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주요 주주가 슬쩍 들어가면서 주요 주주는 물론이고 주요 주주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주요 주주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과의 거래도 이사회 승인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이처럼 주요 주주가 대상주체에 포함됨으로써 발생되는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클 것 같다.

2009년 4대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LG전자의 전체 매출액(약 164조 원)에서 계열사 간 거래액(약 40조 원) 비중은 약 24%다. 4개 기업의 2010년도 이사회 개최실적은 총 41회, 전체 안건은 157개로 1회 평균 3.8건이었는데, 금번 법 개정으로 2009년 4개 기업 계열사 간 거래액(40조 원)의 대부분이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1회 평균 10억 원 규모의 거래가 발생한다고 하면, 4만 건을 이사회에 상정해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10분에 1건씩 처리한다고 가정하면 6,667시간이 소요되며 8시간 기준으로 약 833일이 걸린다. 4개 회사별로 각각 208일씩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계열사 간 거래가 많은 이유는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 소재-부품-완제품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제품개발속도, 기술력, 가격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에 비해 친척 및 관계사 간 거래가 유난히 많은 중견·중소기업은 이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승인건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회사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는 무엇보다 개념이 애매모호하다. 현재의 회사기회를 알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장래에 회사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라는 것이 당장 2~3년 내에 상용화가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50~60년 후 언젠가는 상용화가 가능한 것인지, 또한 성공확률이 어느 정도일지 알기 어렵다. 이같이 명확하지 않은 ‘회사기회’를 법에 규정한 것은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을 위배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명확하지 않은 사업기회를 양도·양도 승인한 이사에 대해 향후 주주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소송을 제기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사업, 신산업 관련투자, 사업구조조정 차원의 매각·분사계·계열사 간 영업양수도 등의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동반성장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기업의 휴면특허 이전사업도 대기업의 회사기회를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회사기회유용 금지에 해당되어 사업이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전기자동차, 2차전지, 태양광 등 융복합 신사업은 초기투자가 많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며, 성공확률이 높더라도 실패시 손해가 막대한 산업이다. 이런 신산업에는 기술과 자금 확보, 리스크 헤지 등을 위해 합작투자를 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다. 그러나 합작투자라는 것이 신설회사에 모회사의 사업기회를 이전하고 파트너에게도 일정 이익을 넘겨주는 것이므로 회사기회유용 금지 대상이 된다. 결국 사후 법적분쟁을 피하려면 신산업 투자를 기존 법인이 100% 리스크를 안고 가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상 언급된 두 조항 모두 이사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것은 과잉입법 우려가 크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미국, 영국, 독일에서 이사와의 거래에 대해서만 이사회 승인으로 규정하고 있고, 회사기회유용 금지에 대해서는 미국에 일부 판례가 있으나 여타 국가에서 명문화된 입법례가 없다.

상장회사에 상근해야 하는 ‘준법지원인’은 상법상의 감사(감사위원회), 외감법상 내부회계관리제도, 공정위의 자율준수프로그램(CP) 등 준법경영을 위한 각종 유사 제도가 이미 도입되어 시행 중이어서 기업들에게 이중부담을 줄 전망이다. 특히, 새롭게 변호사를 채용해야 하는 중견기업은 부담이 커질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문제점이 있는 개정 상법은 제도 시행에 앞서 재개정을 심각히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주요 주주 문제는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토론회나 공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법절차에도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hank0327@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