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이행 1년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

[경제시론] 2013-03-14 |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정인교

오는 3월 15일은 한·미 FTA 이행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될 즈음 불거진 미국과 유럽에서의 재정위기는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선진국 시장은 알뜰 소비를 뜻하는 ‘뉴노멀’이 고착되었고 좁아진 수출시장을 놓고 많은 국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일본 아베정부가 엔화 절하를 추진하면서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대외통상환경이 악화된 오늘날 거대 경제권과의 FTA 체결 등 적극적인 통상정책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1년간 한·미 FTA 교역실적을 되돌아보고, 향후 정책과제를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클 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우리나라 통상정책 사상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고, 향후 우리나라의 통상체제는 물론이고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므로 향후 몇 년간 이행평가와 대응방안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2004년 공식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듬해 말 양국은 협상 개시에 공식 합의하였다. 2007년 4월 협상이 타결되었으나, 미 행정부의 정권교체로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부도상황에 몰린 미 자동차업계를 의식하여 자동차 관세 철폐 일정에 대한 추가 협상을 요구하였다. 추가 협상에 대한 국내 논란이 컸지만, 자동차 관세 철폐 일정을 4년 연기하더라도 한·미 FTA 실익은 유지된다는 판단 하에 우리 정부는 추가 협상을 타결한 후 협정을 이행시켰다.
2012년 재정위기로 유럽에 대한 수출이 줄어들면서 한·EU FTA의 경제효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2012년 무역실적으로 보면 한·미 FTA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2012년 우리나라의 대(對) 미 수출은 4.1% 늘어난 562억 달러를 기록했고 수입액은 446억 달러로 전년 대비 2.8% 줄어들었다. 아직 협정 이행 초반이어서 한 해 교역실적만으로 협정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한·미 FTA가 3월 15일 이행되었고, 이행 직후 몇 개월은 수출실적이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점에서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협정 이행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 한국 수출이 줄어들었고, 대 미국 무역수지가 확대되었다는 점도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정상적이라면 FTA 회원국 간 교역이 양쪽 모두 확대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미 FTA 이행 이후 협의가 진행되어야 할 설계사 등 전문직자격증 상호인정, 개성공단물품 인정 문제, 투자자정부제소권(ISD) 개정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우리나라 수출물품에 대한 원산지 검증 등에서 미국측이 까다롭게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미 FTA에 대한 미국 내 평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통상정책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미국과의 FTA 관련 통상현안은 꾸준히 제기될 것이다. ISD 도입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미국 입장이 다수 반영됨에 따라 우려가 제기되었고, 한·미 FTA에 대한 논란이 폭증했다. 심지어 협정과 무관한 식민지화 주장, 식물정부화, 약값 폭등, 영리병원 허용 등 근거 없는 주장이 한·미 FTA 반대 논리로 등장했다. 한·미 FTA 반대 단체들은 아직도 반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고, 이 중 ISD는 앞으로도 상당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들이 우리 정부의 규제를 ISD로 대응할 것이므로 한·미 FTA 협정 이행 시 식물정부가 될 것이란 반FTA론자들의 주장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ISD는 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이 투자 몰수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었을 때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인 규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전 세계 2,500여 개 투자협정 및 200여 개 FTA 협정에 ISD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부동산, 세제 등 민감한 사안과 건강과 환경 등 공익적 사항에 대해서는 ISD가 적용되지 못하도록 한·미 FTA는 예외 규정을 설정해 두었기에 그다지 우려할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D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자 우리 정부는 미국과 개정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한·미 양측의 ISD 전문가들이 개정협의 범위와 내용에 대한 연구를 마친 상태이며, ISD 수정협상은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첫 통상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론스타가 한·벨기에 투자협정(BIT)상의 ISD를 근거로 우리 정부를 제소함에 따라 한·미 FTA ISD 개정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론스타가 한·미 FTA가 아닌 벨기에와의 BIT를 활용한 것으로 보면 한·미 FTA ISD가 기존 ISD보다 오히려 적용범위가 좁게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ISD 개정협상은 국익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고, 개정에 대한 반대급부가 새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 통상협상체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밀을 요하는 협상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협상내용을 일일이 공개하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협상당국은 협상내용을 국회 상임위나 정당에 보고하는 관행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보안유지를 전제로 국회에 보고된 FTA 협상전략이 그대로 언론에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통상협상전략의 보안강화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따라서 향후에는 통상전략에 대한 보안유지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수년 전부터 통상절차법안이 제출되어 통상정책 결정과정에 국회와 민간전문가들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당초 야당은 협상의 전 과정에 국회의 참여를 주장했지만, 통상협상의 보안 유지와 국민의 알 권리를 감안한 합리적 수준에서 통상절차법이 마련되었다. 지난해 말 정부는 20여 명의 민간전문가와 국회 추천 인사를 중심으로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한 차례 회의를 한 바 있다. 아직까지 통상절차법에 따른 통상협상 결정사항은 없었으나, 앞으로 중요 통상협상은 이 위원회의 자문을 거쳐야 한다. 통상당국은 통상교섭자문위원회를 내실 있게 운영하여 국익과 부합하는 통상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존 FTA와는 달리 한·미 FTA는 활용률이 높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한·아세안 FTA 활용률은 20% 이하인 데 비해, 한·미 FTA 활용률은 5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 FTA 활용률이 높은 것은 미국에 지사를 둔 대기업의 본·지사 간 교역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이미 FTA 활용 역량을 확보한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게 FTA는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소기업의 FTA 활용률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지난 2년 연속 우리나라는 교역 1조 달러를 달성했고, 세계 교역 8강의 위상을 유지했다. 신흥시장 진출 역량을 강화하면서 기 이행한 한·미 FTA의 활용률 제고를 통해 교역 1조 달러를 넘어 2조 달러 달성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중국과의 FTA 협상 타결과 더불어 기존 FTA 망을 보완시킬 수 있도록 주요 교역국가와의 FTA 체결을 추진해야 하고, FTA 허브국가로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교역확대와 투자유치를 증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inkyo@inha.ac.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3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