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 정비, 이렇게 접근하자

[경제시론] 2005-10-06 |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신종익

기업이 부담하는 부담금이 10조원을 돌파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23조원으로 늘어나 법인세수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준조세가 계속 늘어나자 재계는 물론, 정부, 학계에서도 준조세 논의는 부담 경감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중복적 준조세의 통합과 같은 기존의 접근방식으로는 준조세를 줄일 수 없다. 준조세의 문제나 범위와 같은 기본사항에서 부터 잘못 출발하기 때문이다.

준조세에 대한 그릇된 인식들

먼저, 준조세는 부담만의 문제가 아니다. 준조세는 손금산입되므로 실제 부담은 그리 크지 않으며, 현재 재정구조로 볼 때 준조세로 내지 않더라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준조세의 문제는 많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다. 얼마 거두어 어떻게 사용하여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국민은 물론 국회에서도 잘 모른다. 범위를 부담금 밖으로 넓히면 준조세 종류, 규모, 사용내역에 대하여 정부도 알지 못한다. 7,700여개의 행정규제 내용과 변동사항이 인터넷으로 즉각 공시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실상도 제대로 모르면서 준조세 개선방안을 논의하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해법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준조세 범위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준조세를 부담 문제로 접근한 결과, 법정단체 회비, 정부산하기관의 사용료, 과징금 등은 준조세에서 제외되고 있다. 회비와 사용료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며, 과징금은 법 위반에 대한 대가(제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준조세에는 대가성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법정단체나 정부산하기관에는 법에 의무가 규정되어 마지 못해 가입하고 이용한다. 더욱이, 이들 기관들은 회원기업을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규제하여 규제개혁위원회가 금년에 1,000여건의 규제를 개혁했을 정도이다. 과징금 처분 중에도 법원에서 기업이 승소하는 비율이 50% 내외일 만큼 과징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규제 중에 부당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회비, 사용료, 과징금도 준조세에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준조세 용도와 관련된 문제이다. 준조세는 대부분 기금과 특별회계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재원이 확보되어 있으므로 각 부처들은 특별회계 19개, 기금 57개를 만들어 일반회계와 별도로 ‘76개의 지갑’을 갖고 있다. 재정이 77개의 칸막이식으로 운영된 결과, 일반회계는 예산부족으로 성장기반 확충이나 사회안전망 구축사업을 하지 못하는데 비해 기금이나 특별회계는 사업비가 남아돌고 있다. 재정에도 ‘풍요속의 빈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IMF의 권고에 따라 기금과 특별회계를 대폭 통합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준조세라는 재원이 법에 의해 확보되어 있는데도 기금 등을 폐지하려는 부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조세 징수 → 기금?특별회계 난립과 재정효율성 저하 → 재원확보를 위한 세금 및 준조세 증가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는다.

투명성 제고가 해법

준조세는 이 같이 재정효율성 저하, 경쟁제한, 공공부문 비대화와 민간활력 위축 등의 문제를 야기하며, 기금과 특별회계, 법정단체와 정부산하기관 등과 종횡으로 얽혀 있다. 그만큼 준조세만을 정비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다.

준조세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정준조세 관리기본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 모든 법정준조세의 등록과 국회 보고 및 공개, 준조세 신설에 대한 심사, 정기적 평가 등을 이 법에 담아, 음지에 있는 준조세를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문제 있는 준조세는 정비될 수밖에 없다. '97년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에 의해 12,000여개의 행정규제가 인터넷에 공시된 이후 거의 절반이 폐지된 데서 볼 수 있듯이 햇볕의 위력은 대단하다.

둘째, 준조세로 운영되는 기금, 특별회계는 물론, 법정단체, 정부산하기관, 감독기관의 예산, 기능, 사업성과도 공개해야 한다. 우선,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개정하여 이 법의 적용대상을 법정준조세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기관과 사실상 정부에서 기관장 임명 등과 같이 지배하는 산하기관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그래서 존치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기금과 특별회계, 법정단체는 정비하거나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 또한, 업종별 단체를 법적기관으로 설립하여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이들 기관을 민법 32조의 사단법인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셋째, 지속적으로 규제를 개혁하고 규제의 질을 높여야 한다. 행위에 비해 제재가 과도한 규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규제와 중복적인 규제가 우선 정비대상이다.

이 같은 일을 행정부가 맡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회가 나서야 한다. 행정부의 비대화를 통제하고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며,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국회 본연의 역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