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상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시론] 2007-05-10 | 한국경총 전무이사 이동응

어느 한 기업의 노무담당 임원이 고충을 토로한다. 그 기업의 CEO에게서는 “이제 노동운동은 사실상 무기력해졌는데 왜 우리 회사의 노사관계는 아직도 이렇게 어렵게 끌려가고 있는가, 혹시 노무관리자의 능력문제 아닌가” 등등의 질책이 이어진다고 한다. 노사관계를 힘에 의한 관계로 인식하는 단적인 예다.
사회적으로 분명 화합의 분위기는 조금씩 보이고 있으나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들은 노사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기업마다 잘 되는 기업과 못 되는 기업으로 크게 양분되어 가고 있다. 소위 양극화 현상이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사회는 투쟁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노사화합 선언, 임금동결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4월까지의 노사관계 통계만 보더라도 그러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분규숫자나 근로손실일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사협력적 분위기도 6~7월 산별교섭이 본격화되면서 대립과 투쟁의 노사관계로 급변할 수 있기에 지금 우리 노사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최근 일련의 투쟁자제 선언, 노사화합 선언을 접하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나, 한편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우선 사회가 투쟁을 원치 않는다. 모든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투쟁적 노동운동노선에 강한 반감을 표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대내적으로는 고율의 임금인상과 경직된 경영유연성, 대외적으로는 환율하락과 치열한 경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은 도태되고, 일자리도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투쟁으로 치닫는 노동운동은 국민과 사회가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변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 스스로의 반성과 자각도 변화의 요인이다. 투쟁지향적인 노동운동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오히려 일자리를 위태롭게 하여 근로자 자신들에게도 나쁜 결과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임단협 시즌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노동계가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여 특수형태종사자의 노동법적 보호, 한미 FTA 비준 저지 등 각종 정치적 사안들을 제기하고, 아울러 노동계의 가장 큰 투쟁전략인 산별교섭의 관철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할 경우 전체 노사관계에 큰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도 아주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부 강경노조가 투쟁노선을 접지 않고 투쟁의 전술만 변화시킨 것이어서 노사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상생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노사간의 갈등요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와 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본인식이 밑받침되는 노사관계를 말한다. 노사간에는 분명 대립과 갈등의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생의 노사관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면 갈등과 대립은 손쉽게 해소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자주 거론되었던 노사협력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노사협력이란 말은 종종 상대방의 일방적인 양보로 이해되어온 측면이 있다. 또한 근원적인 해결이 어려워 적당히 덮어두고자 할 때 종종 이용되기도 하였다. 노사협력은 밖으로 나타난 피상적 결과를 지칭하지만 상생의 노사관계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노사정 각 부문의 선결과제

지금 상생의 노사관계는 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창출로 귀결되고 있다. 경쟁력을 키우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생의 노사관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 각 주체가 풀어야 할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우선 기업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이를 지켜나가는 실천이 필요하다. 기업은 경영에 있어서 투명성과 인간존중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근로자와의 신뢰관계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투명한 경영과 인간중심의 경영, 원칙있는 경영을 통해 기업은 힘을 가질 수 있다. 기업은 힘을 바탕으로 근로자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조합도 강해져야 한다. 투쟁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하에서 전체 근로자를 위한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건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은 지금까지 많은 발전이 있었다. 과거 사회적 관행상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으나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투명한 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하나의 성역으로 만들어져 변화의 요구에 뒤처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건강한 리더십에서 근로자 전체의 이익 증진을 꾀할 수 있다.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명제를 겸허히 수용하고, 투쟁이 아닌 기업과 전체 근로자를 고려하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펼쳐야 한다. 이제 노동조합도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국가경제의 당당한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강해져야 한다. 지금 정부가 최우선의 정책목표로 삼아야 할 과제는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강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한 과감한 노동시장의 개혁이 요구된다. 노동계의 과도한 요구도 현 상황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거부할 수 있는 강한 정부여야 한다.
노와 사의 불법행태는 법과 원칙에 맞게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자율적·협력적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노사균형적 노동정책’을 펼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노동시장은 노사 당사자간 자율적 메커니즘을 통해 움직여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노동·고용 시장의 현실을 반영치 못한 정책적 충격이 가해진다면 시장의 혼란만을 부채질할 뿐이다.
노사정이 ‘상생의 노사관계 패러다임 구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기 맡은 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때 노사관계는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의 걸림돌이 아닌 국가경쟁력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노사상생을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분배의 파이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不戰而勝’이 바로 상생의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초석으로 최근 노사발전재단을 발족시켰다. 대립과 투쟁의 패러다임을 상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우선 노사간 이해가 일치하는 사업부터 같이 해보자는 취지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春鬪가 春討로 바뀌었다 한다. 또, 또 둘 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똑같다. 관례적인 춘계임금교섭 투쟁에서 일자리와 국가경제를 위한 토론과 협의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 것인가? 우리 노사관계에도 ‘봄다운 봄’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곧 현실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