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의 발간 의의와 향후 활용과제

[경제시론] 2007-04-10 | 한국학중앙연구원 경제학 교수,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전택수

고등학생은 누구나 졸업하면 시장경제사회에 진출하기 마련이고, 매일매일 다양한 형태의 경제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경제교육은 이들 학생들에게 미리 시장경제의 운용원리를 이해시켜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고교 경제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갖게 되는 마지막 기회이므로 자신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경제원리는 각종 개념을 사용하여 복잡한 경제현상을 단순화한 것이므로 추상적이면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교과서는 기본개념이나 경제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학생들의 인지발달 과정을 고려하여 현실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도입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인지발달 과정과 시수의 제약을 고려하여 경제학자들이 모여 교과서에 담아야 할 내용으로 희소성, 기회비용 등과 같은 20~22개의 기본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원리를 설명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전문학자들이 모여 기본개념을 선정하기 위한 논의과정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지식인들은 시장경제체제를 불신하고 있다. 이는 결국 경제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기존 경제교과서에 대해 다르게 평가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부와 전경련은 학생들로 하여금 시장경제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균형잡힌 경제교과서를 집필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두 기관은 일차적으로 현장 교사에게 도움이 될 참고용 교과서 모형을 개발해 줄 것을 한국경제교육학회에 제안하였다. 이에 본 학회는 제안서를 교육부와 전경련에 제출하였고, 두 기관은 적절한 심의과정을 거쳐 기본계획을 확정지었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본 학회는 학회 홈페이지에 기본 목차를 공시하고, 여기에 참여할 집필진을 공모한 후 최종적으로 10명의 경제교육 전문가를 집필진으로 선정하였다.
집필진은 1박 2일의 합숙에서 장시간의 토론을 통해 두 가지 집필원칙을 정했다.
첫째,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이 미래의 사회인이 될 학생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염두에 두고 집필하자는 것이다. 둘째, 학생이 시장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사회에 진출해서 경쟁력 있는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담자는 것이다. 집필자들은 각자가 작성한 단원별 소제목을 제출하여 토론을 통해 서로 조정하였고, 구체적인 집필내용은 각 집필자의 자율에 맡기기로 하였다.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의 특성으로 크게 두 가지 점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내용적으로는 미국경제교육위원회가 선정한 22개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전체 구도를 설계하였으며,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면서 응용력을 키우기 위해 읽기자료를 많이 소개하였다.
읽기자료로는 국내외의 유명 경제학자들의 연구물에서 나오는 내용과 각종 경제활동에서 나타나는 유사사례들 중에서 교과서의 본문을 보충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을 선정하였다.
둘째, 내용체계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통합한 일체형 교과서이면서 교사의 지침에 따라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교수학습법을 도입하였다. 내용의 구성에서는 단원의 내용을 그림으로 간단히 구조화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제고시키도록 하였다. 그리고 심화학습을 두어 우수한 학생들이 발전학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으며, 학생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경제원리를 체득할 수 있도록 체험학습 과정을 도입하였다.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에 담긴 내용에 대한 비판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하여 보겠다.
첫째, 기업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이 연구비를 지원하였다 하여 그 연구결과도 시장 및 기업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연구비의 출처 때문에 제기된 비판이라면 억측이다. 이는 투명하고도 공정한 집필자 선정과정에서 해명되었다고 보며, 시장경제체제의 이론적 단점도 적절한 곳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1인당 소득 2만 달러에 불과한 한국이 3만 달러를 상회하는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경제성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설명을 문제 삼는다. 성장 이외의 다른 방법이 어디 있나? 물론 성장을 달성하는 데에는 공정한 분배, 기업의 투자환경 개선, 시장개방, 지역균형발전 등의 방법이 있으나, 이들은 학자들 사이의 논쟁의 대상이 되므로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정부의 역할이 폄하되었다는 것이다. 순수한 이론적인 시장모형에서는 정부의 간섭이 사회적으로 손해를 가져온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가설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정부의 간섭 내지는 정책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더구나 2단원과 4단원에서 시장실패의 보완과 거시정책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유의할 것은 시장은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정부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므로, 가능하면 작은 정부가 좋다는 점이다.
셋째, 노동조합의 역할이 폄하되었다는 것이다. 노조의 존재 목적은 구성원의 복지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노조가 임금의 증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노조가 고임금을 요구하면 기업은 고용의 감소로 대응한다는 것은 수요원리를 노동시장에 응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차세대 교과서 모형은 실업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를 지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 기존의 5개 경제교과서는 노동 및 노동조합에 관한 내용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은 진일보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경제를 정치·사회·윤리 등과 연계해서 서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학생의 인지능력, 경제교육의 목적, 그리고 시간의 한계라는 제약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현상을 경제원리로만 설명하는 데도 어렵다고 하는데 여기에 정치논리, 문화논리, 그리고 사회논리까지 포함시켜 통합적으로 설명하면 학생들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학생들은 교사들의 주관에 의존하는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 지적 불구아 혹은 사회적 낙오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하겠다. 더구나 이 복잡한 문제를 교사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전문가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1962~1996년 사이에 우리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설명을 두고 비판자들은 박정희를 미화했다고 하는데, 박정희의 독재는 경제교과서가 아닌 정치, 법률 혹은 사회문화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은 6개월의 짧은 집필기간과 내용 체계상의 새로운 시도 등을 고려해 볼 때 다소 문제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지적된 여러 장점 때문에 경제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유용한 참고도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차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장경제 현상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우수 학생들에게도 자습용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용체계를 변경하고 일부의 내용을 보완하면 일반 국민들에게도 시장경제원리를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교양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