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의 문제점

[경제시론] 2013-05-16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추광호

현재 국회에는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위한 관련 법률안들이 계류되어 있고, 최근에는 이 같은 입법안의 내용과 관련한 공청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사외이사 추천권, 대표소송 제기권 등 상법에 따라 부여된 주주의 권리를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며(즉,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의무화하여 회사의 다양한 경영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강제함을 의미), 둘째는 의결권 행사기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의결권 강화를 전제로 논의되는 의결권 행사기구의 독립성 확보 방안 역시 예산상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 비중은 18.7%에 달해

2012년 말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총 규모는 391.9조 원이며, 이 중 약 18.7%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고, 주식시장에서의 연기금 비중은 6.3%에 이르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반대표를 행사하는 비중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12년에는 모두 587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2,565건의 상정안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였으며, 그 중 436건(17.0%)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하였다. 상정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 비율은 2003년 1.9%에서 2012년 17.0%로 9배가량 증가하였다.

의결권 행사 강화가 오히려 기업경영의 효율성 저해할 수 있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의결권 행사가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금 운용이나 의결권 행사 등을 위한 이사회나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큰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취득해 공시한 기업은 229개 사(社)이며,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회사도 포스코, KT, 신한지주 등 상당수에 이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유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결국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의 지주회사가 되어 주요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자회사나 손자회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얼마나 제고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민연금이 무한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의 경영전략에 대해 간섭하고 통제할 경우의 부작용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업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가장 적합한 지배구조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특정 지배구조를 기업에 강요하거나, 특정 산업에 대해 투자를 권고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런지 의문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의 대부분이 심각한 부실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폐해는 더욱 뚜렷해진다.
셋째,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해외의 다른 연기금과 달리 가입이 강제되어 준조세에 가까우므로, 주주권 행사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알려져 있는 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ABP(네덜란드 공무원 연금) 등은 직역연금으로 수익률 제고를 위해 민간펀드와 같이 운용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입이 강제되는 국민연금과는 다르다.
넷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 확대에 따른 주식시장 교란 가능성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연금의 보유주식 규모는 시가총액의 6.3%에 달하며, 운용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추세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운용 비중을 늘려 가면 우량기업에 대한 보유지분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연금 수령 연령에 달한 가입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머지않아 국민연금의 지출은 급속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국민연금은 보유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따른 주식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특히 이 같은 상황을 감지하고 있는 전문 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가 미리 관련 주식을 매도할 경우 주식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방안도 회의적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방안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위원회를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가입자 대표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데, 개정 방안은 이 같은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배제하는 대신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 선임에 있어 과연 정부로부터 얼마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기금의 수익성과 전문성만을 강조하여 연금의 납부주체인 가입자의 참여를 배제시킬 경우, 대리인 문제의 심화로 오히려 기금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금운용의 독립성·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책임성 강화가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의 설립 역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비용을 투입하여 별도의 기구를 설립하더라도 오히려 옥상옥(屋上屋)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전문성 확보 및 시장 영향력 완화를 위하여 위탁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는데, 기금운용공사가 설립되더라도 실제 역할은 위탁투자운용대상 결정과 성과 평가 등에 집중되고 직접투자는 일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실효성 없고 과도한 비용이 드는 기금운용공사 설립은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은 조만간 닥칠 국민연금 고갈에 대비하여 건전성을 확보하고, 국민연금이 실제로 국민들의 노후보장대책의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앞으로 보전 규모가 더욱 늘어나 국민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특수직역연금에 대한 해결책 모색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ck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