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정책의 바람직한 논의방향과 과제

[경제시론] 2013-02-15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병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중시’ 방침을 밝힌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정부 주변에서 많은 중소기업지원책이 제시되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의 가업 상속을 가로막았던 상속세 부담 경감 및 소상공인 지원 등 획기적인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은 오랜 기간 동안 정책적인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었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부문은 효율성과 생산성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다. 중소기업 지원·보호정책은 비효율적인 부문에서 보다 효율적인 부문으로 자원이동을 억제 또는 지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생산성의 저하는 기술개발이 저하되거나 원활한 진입과 퇴출이 지연되어 저생산성 부문에서 고생산성 부문으로의 자원이동이 제약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 관련 정책·제도가 보호와 지원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제도적·정책적 제약으로 인해 자원이동이 느려지거나 어려워지는 상태에서 생산성 저하가 뚜렷하게 발생하여 혁신을 통한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

더욱 강해지는 중소기업 보호
- 대기업 규제 기업정책의 문제점

최근까지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방안 제시보다는 여전히 보호·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정책 기조는 대기업을 규제하는 한편,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 보호-대기업 규제법안들이 다수 발의되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입법화, 유통산업규제법안 발의, 부당단가 인하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도입 등이 그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간판을 바꿔달고 나타난 것이 바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인데, 현재 중소기업 지원제도로 알려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제도는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어렵게 하는 정책 중 하나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적용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그 업종에서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성장을 높이는 정책인지 진지하게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의 내용을 보면, 중·소도시 대형마트의 신규입점을 지역협의체에 합의된 경우에 한해 허용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규제적인 내용들이 다수 도입되고 있으나 이 같은 진입제한은 지역유통산업의 비효율성을 온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 같은 규제정책은 장기적인 유통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정책방향이 아니다. 진입제한을 통해 경쟁을 가로막고 성장을 저해하는 과도한 중소기업 보호정책은 중소기업을 키우는 지원책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으로 묶는 제도에 불과하다.
또한 서면계약서의 미교부행위, 인력 탈취행위 및 부당 납품단가 인하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탈취에 대해서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 미국식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과징금 제도가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필연적으로 과잉규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의 중견·대기업으로의 성장정책은 바람직

새 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통해서 중소기업을 뛰어넘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중견기업의 경우에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내외 개방을 통해 경쟁에 더욱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중견기업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R&D 투자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R&D 투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높은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현재의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중견기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요 대기업과의 안정적인 거래관계가 구축되어 있으며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중견기업은 R&D 투자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어, 투자비율이 다른 규모의 기업보다 훨씬 더 낮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견기업을 대내외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은 중견기업으로 하여금 경쟁력 향상을 위한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까지 기존 중소기업이 경쟁압력을 뚫고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한 케이스는 아주 적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기업정책이 ‘보호위주의 중소기업 정책’과 ‘규제위주의 대기업 정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소기업 지원의 확대가 오히려 중소기업이 정부 지원에 안주하려는 유인을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정책자금 지원정책, 조세지원정책, 정부조달정책 등 많은 지원제도를 활용하여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정책이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할 달콤한 유혹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이 성장하여 중견·대기업이 되면서 받는 규제는 기업성장을 억제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종업원 5인 이상일 경우 적용되는 해고규제, 근로시간 규제 등 근로기준법상의 강행 규정을 시작으로 중소기업 규모를 벗어나면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다수의 규제를 받는 대상이 된다. 일자리를 늘리면 늘릴수록 규제부담이 커지니 중소기업 안에서도 300인 미만 중소기업을 유지하면서 각종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혜택만 챙길 유인이 강한 것이다.
중소기업에 제공되는 정책자금이 효율적으로 쓰여 중소기업 성장과 경쟁력 향상을 돕는 경우에 그러한 중소기업 정책은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다양할 뿐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기업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지원체계의 구축이 미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 정책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성과 좋은 기업에 더 많이 지원되는 중소기업 정책 체계 필요

중소기업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원 이전과 이후에 효율성 평가를 통해 정부정책의 효과가 떨어지는 수혜기업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창업초기 첨단기업에 대한 지원은 활성화하되 좀비기업에 정부지원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체계 조정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에는 중기청 외에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있으나 각 부처별로 시행 중인 중소기업 지원사업 간에 유기적인 연계가 미흡하여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지원대상, 지원내용 등에 대한 부처 간 협의·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책이 시행됨으로써 성과가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지원, 특정기업에 대한 중복지원이나 특정 성장단계에 대한 쏠림현상 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별 지원사업의 내용, 수혜기업의 이력에 대한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lbk@keri.org)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2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