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자금시장 활성화 과제

[경제시론] 2009-04-14 | 전경련 경제본부 금융조세팀장 김용옥

최근 국제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세계 경제침체의 영향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정책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자금사정은 신용경색과 경기침체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1998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정책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중견기업들의 자금사정마저 악화되는 상황이다.

1998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운 상황 지속

은행권의 경우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신청 이후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면서 기업에 대한 신규여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은 유지하면서 전체 위험가중 자산을 줄이려다 보니 중견 대기업에 대한 대출금마저 회수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직접금융의 경우도 주식시장의 침체로 유상증자는 엄두를 내기 어려우며, 회사채 발행은 일부 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인수자를 찾기 어려워 이를 통한 자금조달 역시 곤란한 상황이다. 신용등급 A 이상 기업 위주로만 제한적으로 회사채 발행이 가능하며, BBB등급 이하 기업과 구조조정이 추진중인 A등급 건설기업은 발행 자체가 어렵다.
수출환어음 할인, 수출환보험, 수출보증, 수입유산스 등 수출입 관련 금융도 외환수급 불균형으로 여의치 않다. 유산스의 경우 내수용 수입유산스의 신규 개설이 쉽지 않고, 건당 수백만 달러가 넘는 중견기업들의 수입물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상 금융시장의 기업 자금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험자산 회피로 자금의 단기부동화 심화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20조 원이 넘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기준금리를 3.25%(5.25%→2%) 포인트 인하하였으나, 시중 자금경색 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시중에 공급된 유동성은 금융기관을 통해 실물부문으로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단기 고금리 금융상품으로 집중될 뿐 은행대출 확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단기채권형펀드,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예금(MMDA),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의 단기 유동성은 8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는 경기침체 및 금융시장 불안 등의 영향으로 금융기관들의 위험자산 회피 경향이 커지고 있는 데 주로 기인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안전자산에 자금을 운용하고 부실채권화를 우려해 기업대출을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권의 대출태도지수는 지난해 4분기 －23으로 사상 최저수준을 기록하였으며, 금년 1분기에도 －16으로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신용위험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나빠지고 있어 향후 대출확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으며, 시중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고 이후 부동산, 주식 등으로 쏠릴 경우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5%대에서 3%대로 낮아졌지만 같은 만기의 신용등급 A등급 회사채수익률은 6% 수준이다. 절대 다수의 기업이 속해 있는 BBB등급 이하 회사채 금리는 12% 이상으로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시인 지난해 10월 말(11.32%)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올 들어 3월 중순까지 발행된 회사채 중 BBB등급은 전체 발행량의 2%도 채 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정부의 채권시장안정펀드의 매수에 힘입은 바 크다.
신용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회사채 투자자들의 장기물 기피 영향으로 회사채 만기가 짧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금년 들어 발행된 회사채 중 만기가 2년 이하인 회사채 비중은 1월 43%, 2월 34%로 지난해 평균 14.8%보다 2~3배가량 증가했다. 시중자금이 단기 금융상품으로 몰리고 회사채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시장의 불안감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해 준다.

시중자금의 실물부문 공급에 정책초점 둬야

당면한 기업금융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중자금이 실물부문으로 흐르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 자본확충펀드의 조기확충 및 원활한 지원 등을 통해 은행권의 자기자본을 보강하고 기업대출 기능을 복원하는 것이 긴요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0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 조성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12조 원 수준을 1차로 지원하고 2차 지원 여부는 추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12조 원이 지원되면 은행권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5% 포인트 상승하고, 약 120조 원의 대출여력이 발생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5조 원 규모로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보다 확대하여 발행이 어려운 신용등급 A 건설업 회사채 및 BBB등급 이하 일반회사채 매입을 확대하는 것이 요청되며, 수출입은행 자본금 및 수출보험공사 기금확충 등을 통해 수출입금융을 원활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부채비율, 여신한도 등 환율상승으로 발생하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율상승으로 외화환산손실이 급증하여 부채비율이 상승한 경우에는 주채권은행과의 재무약정 체결을 일시적으로 유예하고, 외화대출은 대출당시의 환율을 적용하여 여신한도를 산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조선업체의 선수금환급보증은 대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50%를 여신으로 책정해 여신이 급증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여신한도 반영비율을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시중유동성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 대기업에도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유도하되, 특히 신용경색 발생분야에 집중 투입하여 일시적 자금난 때문에 우량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올해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금시장의 원활한 흐름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것은 물론 경기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통화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함께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보다 과감한 기업금융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yokim@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9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