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 증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제시론] 2012-05-13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이철행

정권 하반기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고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지면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표를 얻기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재벌 개혁을 내세우면서, 대기업으로부터 시장과 중소기업,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 자주 언급되는 분야가 대기업의 계열사 증가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계열사 증가 및 문어발 확장으로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이 침탈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총선을 앞두고 ‘재벌개혁 3대전략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재벌들이 식음료소매업, 수입품 유통업, 동네빵집, 순대, 떡볶이 등 중소기업, 자영업, 골목상권의 영역에까지 무분별하게 진출하고, 가족이 세운 특수관계회사에 ‘일감몰아주기, 특혜적 거래관계 유지’ 등을 통해 2세나 3세에게 편법적으로 부를 대물림하면서 ‘고용창출, 비정규직 해소’ 등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이나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정치권의 주장들
골목상권 몰락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포퓰리즘적 정서로부터 시작되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런 정치권의 주 장에는 많은 오해가 담겨 있다.
우선,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제도 운영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2월 발표한 ‘2007년 이후 대기업 집단의 계열회사 증감현황’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 된 2009년 이후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증가율이 출총제 폐지 이전보다 오히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출총제 폐지가 대기업 계열사 증가로 이어졌다는 정치권의 주장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2007년부터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지정된 35개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는 지난해 4월 현재 1,205개로 나타났다.

이는 출총제 폐지 직후인 2009년 4월 1,034개에 비해 171개 늘어난 것으로 폐지 이후 2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8.3%였다. 반면, 출총제 폐지 이전인 2007년 4월부터 2009년 4월까 지 이들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수는 222개 늘어 연평균 증가율은 13.7%에 이르렀다. 연도별로는 출총제 폐지 이전인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에 계열사 증가율이 13.6%로 가 장 높았고, 출총제 폐지 직후인 2009년 4월부터 2010년 3월은 3.8%, 2010년 4월부터 2011년 3월은 12.3%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총제 폐지 이후 2년간 계열사 증가율이 폐지 이전보다 낮은 것을 감안하면 출총제 폐지가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확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일부에서 재벌 때리기의 대표적인 근거로 내세우는 “경쟁력 강화하라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더니 우후죽순처럼 계열사를 늘려 ‘문어발’도 아닌 ‘지네발’식 확장에 나섰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잃는다.

대기업은 무분별하게 계열사를 확장했나?
그렇다면 대기업은 흔히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주장하듯 무분별하게 계열사를 확장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업들이 신성장동력과 기존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를 늘린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면 대기업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전경련이 20대 그룹의 지난 3년간(’08~’10) 신규 계열사 증감을 조사한 결과, 총 386개(’08년 128개, ’09년 143개, ’10년 115개)가 증가(제외 계열사 166개, 순증 계열사 220개)했다. 10대 그룹은 ’08년 71개, ’09년 100개, ’10년 70개 등 총 241개 증가했고, 11~20대 그룹은 ’08년 57개, ’09년 43개, ’10년 45개 등 총 145개 증가했다. 신규 계열사의 업종을 살펴보면 제조업(85개, 22.0%),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64개, 16.6%), 운수업(41개, 10.6%), 사업지원 서비스업(36개, 9.3%) 등의 순서로 분포되며, 수직계열화에 해당하는 신규 계열사는 386개 중 305개로 79.1%에 달했다. 신규 계열사 중 기존 주력업종과 관련이 없는 기타 계열사는 386개 중 81개로 20.9%인데, 이들 비수직계열사 중에는 그룹 차원에서의 신사업 투자로 볼 수 있는 사업다각화(16개), 축구단과 같은 사회공헌사업(4개)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늘어난 계열사가 재벌 탐욕의 전형으로 치부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2009년 3월 출총제 폐지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상호출자 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된 계열회사 변 동내역을 살펴보면, 30대 그룹의 상호출자제한 계열사는 지난 2009년 4월 1일 953개사에서 1,153개(중복사 3개 포함 1,156개사)로 21% 늘어났다.2) 특히 총수가 있는 재계 10대 그룹인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 등은 계열사 수가 469개에서 581개(중복사 2개사 포함 총 583개)로 23.9% 늘었다. 계열사 수가 증가한 것 은 사실이나 그 사업내역을 살펴보면 문어발, 지네발 확장으로 보기에는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출총제 폐지 후 2년 10개월간 설립된 삼성의 22개 계열사 중 16개는 바이오, LED, 첨단소재, 소프트웨어 등 신성장동력 사업이며 나머지 6개사는 기존 사업을 확장한 사업체다. 현대중공업도 새로 설립한 8개 계열사 중 5개 회사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사업분야이다. 한진의 경우12개 계열사가 늘었으나 대부분 그룹 주력인 항공, 해운, 물류 등과 연관된 계열사가 대부분이며, GS도 환경에너지와 건설 등 그룹 핵심 사업관련 계열사가 주로 증가했다. 한화의 경우 지주회사 한화도시개발 산하에 5개 계열사를 신설했는데, 이들 기업들은 지방경제 발전에 필요한 특수목적법인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같은 기간 41개 계열사에서 55개 계열사로 14개가 순증했는데, 증가한 주요 원인은 현대건설에 딸려 있는 건설관련 계열사 13개가 한꺼번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효과를 제외하면 현대차는 자동차 관련 3개사가 증가했을 뿐이다.

대기업들의 수직계열화 및 전문화와 같은 한우물 파기식 계열사 증가를 골목상권 침해나 중소기업 업종 침투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hank0327@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2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