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에는 “자기돈이라면…” 의식이 필요하다

[경제시론] 2008-02-12 |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효종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후보를 선출했다. 한나라당 이 후보의 당선은 단순히 “권력은 영원할 수 없다”는, 이른바 ‘권불십년(權不十年)’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바뀌는 것을 넘어서서 ‘방향’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호가 왼쪽으로 항진하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항진하겠다는 결의가 분명하지 않은가.
방향을 바꾸겠다는 첫 번째 결의는 근거없는 공공성예찬론과 ‘제 것’에 대한 폄훼의식을 바로잡겠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본다”는 바이블의 말처럼, 과거 정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부실패’나 ‘정책실패’는 감추고 ‘시장실패’와 ‘기업실패’만 타박했다. 이 왜곡된 인식의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실패가 ‘내 것’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야기되는 것이라면, 정부실패는 반대로 ‘내 것’에 대한 애착이 너무 부족하여 야기되는 사태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나 시장행위자들의 ‘제 것’에 대한 애착을 무조건 저급한 이기주의로 몰아부쳤던 것이다.
그들은 자나깨나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냉소하고 그 대안으로 ‘공공성’을 입에 담았다. 재산권, 행복추구권, 효율, 창의성, 책임 등의 개념이 쇠퇴하고 정의, 평등, 균형, 협치, 평화 등의 말들이 유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들의 공통 분모는 한결같이 ‘우리 모두’를 키워드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좌파공동체주의자들답게 ‘우리’와 ‘우리 것’에 집착하는 한편, ‘나’와 ‘나의 것’을 폄훼하다 보니 이기주의, 행복추구 등을 기득권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우리’를 강조한 나머지 모든 것을 사적영역에서 떼어내어 공공영역으로 만들고자 했다.
대통령부터 퇴임하면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겠다고 공언하는 등 임대주택예찬론을 폈고, 또 사립학교도 공립학교처럼 운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내 구두’는 있으나 ‘우리 구두’란 없고 ‘내 안경’은 있으나 ‘우리 안경’이란 없는 법이다. ‘우리 구두’나 ‘우리 안경’은 나한테도 너한테도 맞지 않는 쓸모없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정부와 비슷한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그토록 선호한 공공성은 ‘야누스적 얼굴’을 가진 가치다. 그것은 일단 우리 모두의 이익과 관련되었다는 것으로 긍정적 의미를 갖고는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기여할 생각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공공재’의 의미를 갖고 있어 부정적 함의를 갖는다.
그런데 좌파진보주의로 무장한 386정치인들은 공공성의 첫 번째 의미만을 알았을 뿐, 두 번째의 부정적 의미는 몰랐다. 그 결과 공공성은 과잉평가하는 반면, 그와 대비되는 ‘사적이익’이나 이기주의가 갖는 양질적 함의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왜 많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향유하는 강이 1급수에서 2급수로 전락하며, 또 ‘내 집’은 깨끗한데 왜 ‘우리 공원’은 더러울까 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가정급식에서는 식중독이 없는데 왜 집단급식에서는 집단식중독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것’에서는 “처삼촌묘 벌초하듯” 얼렁뚱땅, 낭비, 부주의, 도덕적 해이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방불케 하는 ‘공공재의 문제’가 발생하는 반면, ‘내 것’에서는 “쥐면 터질까, 불면 나를까”하며 절제와 아낌, 효율성에 전력투구하는 ‘사유화’의 양질적 효과가 초래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따라서 사기업은 왜 효율적이며 생산성이 높고, 공기업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지 알지 못했고, 정부미가 맛이 없는 데 비해 시장쌀은 왜 맛있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국가운영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은 정부를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능력은 없지만 대통령 선거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만 쓰고 또 썼다. 그 인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직을 ‘제 것’처럼 아꼈다면 과연 그런 ‘회전문 인사’를 고집할 수 있었을까. 정부를 ‘제 것’처럼 아꼈다면 능력있는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하고 무능한 측근은 ‘읍참마속(泣斬馬謖)’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공직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한시적인 것이라고 보았기에 ‘능력’보다 ‘연고’있는 사람들에게 인심을 쓴 것이다. 만일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일군 기업을 가진 기업가라면, 능력없는 아들에게 자신의 사업을 책임지라고 중책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주인의식이 없었기에 책임의식도 없었고 ‘뜨내기 의식’만 있었던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비극이었다.
우리는 국민의 혈세로 지은 공항이 이용객이 적어 국고낭비가 발생할 때 공항건설을 결정한 정부에 어떤 비판을 가하는가. “이것이 제 돈이라면 과연 이런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또 잘못 지어진 공공건물이나 필요 이상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도지사 관사를 보면서 “자기 돈이라면 그런 식으로 건물을 지었을까”라며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정부는 “제 돈이라면 그렇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임기를 시작했을 무렵 150조 원 하던 나라 빚이 300조 원 정도가 될 정도로 배가 된 것이다.
나라 빚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자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정에서 빚을 내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다. 더구나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부채를 지우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간이 컸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 돈도 아닌데”, “내 빚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면 책임도 지지 않는다. 나라 빚을 늘렸다고 좌파진보성향의 시민단체가 소송이라도 낼 것인가. 그런 시민단체는 기업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주주의 신뢰를 저버렸다며 검찰에 고발하겠지만, 공직자가 나라 빚을 배 가까이 늘인 것에 대해서는 십중팔구 침묵할 것이다.

국리민복의 정부를 꽃피워야 할 것

새 정부에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내 나라’, ‘내 국민’, ‘내 영토’, ‘내 터전’, 이런 생각의 편린들 말이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영토선이 아니라고 생떼를 부리진 않을 것이다. 또 국민들로부터 거두는 세금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퍼줄 생각만 하고 대규모 경제원조만 생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적영역에서 피땀 흘려 돈 한 번 벌어보지 않고 세금조차 내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는 다를 테니, 가렴주구형의 부동산세제는 뜯어고칠 것이다. 또 ‘내 터전’의 개념을 갖고 있을 테니 ‘버블 세븐’을 ‘럭키 세븐’이라고 고칠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가 ‘내 것’이 아니고 ‘네 것’도 아닌, 따라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을 고집함으로써 국정(國政)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면, 새 정부는 ‘내 것’이라는 의식을 기초로 하여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정부’를 꽃피워야 할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2월호 [시장경제 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