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懲罰的 損害賠償制度’ 도입, 신중해야

[경제시론]
2004-07-19 | 양금승 팀장 양금승

    최근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는 민사재판에서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실제 피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懲罰的 損害賠償制度(Punitive Damage)?의 도입을 심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와 이에 동조하는 변호사들이 수년전부터 주장한 것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실제 피해액외에 징벌적 의미의 배상액을 추가하여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도입취지이다.
    소비자를 상대로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측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에 너무 집착하여 기업과 경제현실에 미치는 파급영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칫 빈대 잡으려다 草家三間 태우는 愚를 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특히,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미 도입된 ‘제조물책임법’ 외에 현 정부들어와서 증권집단소송법을 필두로 ’消費者團體訴訟制度‘  ’私訴制度‘, ’公益訴訟制度‘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소송제도가 봇물처럼 도입되고 있다는 인상이 매우 짙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경영시대에 우리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하는 것이 기업본연의 임무이다. 악덕기업에 대한 사회적 責任과 制裁에 대해서는 일응 공감하는 측면도 있으며,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가 재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그 장점 보다 소송남발에 의한 기업활동 위축이라는 단점이 더 크며, 우리나라 법체계와 재판제도를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우리나라에 도입할 필요성은 매우 적다고 판단된다.
    첫째, 그동안의 많은 경험적 연구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도입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론인 반면, 징벌적 배상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업들은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 경영을 하게 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과다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무서워 기업의 47%가 제품의 계속 생산을, 25%가 새로운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39%가 새로운 제품의 출시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이럴 경우 양질의 제품이 개발?공급되지 않아 오히려 소비자 보호의 취지에도 逆行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시행되는 증권집단소송제도에 이어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가뜩이나 저조한 기업활동과 투자를 위축시켜 일자리 창출에 찬물을 끼 얻는 꼴이 될까 걱정된다.
    둘째, 피해자들은 정당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있어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없이 배심원들의 감정과 편견에 사로잡힐 경우 황당한 판결을 내릴 위험성이 높다. 또한 피해자들과 이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실제 손해액의 수백배에 이르는 배상을 추가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럴 경우 소송 인센티브를 노린 브로커, 기업형 변호사에 의한 濫訴 가능성이 매우 높아 질 것이다.
    셋째,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미법계에서 판례에 의하여 발전된 제도로서 대륙법계 국가 중에서 이를 받아들인 나라는 전혀 없다. 미국의 50개州에서도 각 州에 따라서는 명시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부정하거나, 개별 입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는 州가 적지 아니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의 부작용 때문에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더욱이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한국법체계에서 이를 수용하기가 더욱 곤란하다.
    배심제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배상액 산정에 대한 일반적인 재량을 법관에게 인정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며,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손해배상액이 국가가 아닌 피해자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법의식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넷째, 실제 피해액을 훨씬 능가하는 징벌적 배상을 명하는 것은 違憲素地마저 있다. 현행법상 손해배상은 원상회복이라는 보전적 측면이 강한데 가해자에게 이러한 정도를 초과하는 배상의무는 위험하고, 가해자에게 손해배상과 징벌금의 이중처벌은 위헌소지도 있다.
    다섯째, 실효성도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견해는 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여 악의적으로 소액 다수 또는 불특정 다수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예방의 효과는 형사절차 또는 행정절차를 정비하여 해결하는 것이 正道이고, 소액다수 피해자는 집단소송제, 제조물책임법 등으로 충분히 구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