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출총제 폐지의 필요성

[경제시론] 2006-11-10 | 전경련 기업정책팀장 양세영

지난 10월 23일 그동안의 대규모기업집단시책 T/F 논의가 마무리됨으로써 향후 대기업집단정책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그간 동 T/F는 총 10회에 걸쳐 로드맵 과제의 진행상황 점검, 출총제의 성과평가, 내·외부견제 시스템평가와 함께 출총제의 개선방안 등에 대해 논의와 토론을 진행하였고, 본회는 ‘조건없는 출총제 폐지’안을 제시하여 경제계의 분명한 입장을 표명함과 아울러 참석한 위원들은 물론 재경부 등 정부부처 관계자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데 노력하였다. 앞으로 공정위는 T/F 논의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11월중 부처간 협의를 거쳐 대규모기업집단시책에 대한 정부(안)을 확정한 후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성장·투자 제약해 온 출자총액제한제도

현행 출총제는 우리의 경제환경과 기업경영 현실에 비추어 규제의 실익은 없고 부작용만 있어 폐지가 시급한 규제다. 그 근거로서 첫째, 출자규제의 근거가 되는 소유·지배권의 괴리현상은 우리 기업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며 외국에서도 경영권 보호를 위해 허용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상호출자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권의 괴리현상은 동일한 기준적용시 영미 국가, 서유럽 선진국, 동아시아 국가 등 24개국 가운데 중간수준에 불과하다.
둘째, 우리 대기업의 규모, 경제력집중을 나타내는 지표, 다각화 수준 등을 보면 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며, 최근 들어서는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이다. 2000년 이후 기업성장이 지체되면서 추가적으로 글로벌 대기업이 출현하지 않고 있으며 규모도 외국에 비해 여전히 작다. 이는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막은 출총제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판단된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을 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과 같은 수준인 12개 기업으로 정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고, 기업당 평균 자산이나 평균 종업원 수도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크게 뒤지는 상황이다. GDP 대비 10대 기업 매출액도 한국은 29.3%로 OECD 회원국 중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인 국가들의 평균(39.2%)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 기업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일반집중이나 산업 내에서 상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산업집중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다각화 수준 역시 외국에 비해 높지 않은 수준이다.
셋째, 출총제는 기업의 신규투자와 신성장산업 진출을 저해하고 심지어 예외기간이 만료된 외국인과의 합작투자와 같은 경우에는 기존 투자마저 철수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기업의 투자방식은 회사내 사업부를 신설하지 않고 신규법인 설립을 통해 추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출자규제는 이러한 법인 설립 자체를 제한한다. 또한 기업들은 기존 기업을 인수(구주취득)한 이후 경영개선을 통해 실물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투자방식을 활용하고 있으나 이러한 투자확대도 제약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나 KIET의 실증연구 결과에 의하면, 출자와 투자간에 관계가 없다는 과거 연구(KDI)와 달리 출자가 시차(1~2년)를 두고 투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초기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고 리스크가 큰 첨단산업 등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서는 단일기업으로는 자본동원이 어려워 계열사간 출자에 의한 집중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이를 원천적으로 막음으로써 제2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출현을 기대하기 힘들고 이는 국가경쟁력의 상대적 저하로 이어진다.
넷째, 출총제는 세계적으로 입법례를 찾을 수 없는 제도로서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을 초래하고, 외국기업은 국내에서 계열출자 형태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기업의 인수가 자유로운 반면, 국내기업은 최소한의 경영권방어를 위한 계열사 출자도 제약하여 국내기업이 적대적 M&A에 취약하게 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논의되는 대안들은 사전규제로서 투자위축 초래

순환출자 규제는 우선 규제근거인 가공자본 형성이 순환출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연결·결합재무제표 등 현행 공시제도로 충분히 차단이 가능하다. 만일 순환출자를 규제할 경우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의 핵심고리가 해체되어 기업집단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지분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민영화기업 인수, 분사, 계열분리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구조조정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적대적 M&A에 적절한 방어수단이 없는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경영권 확보에 커다란 애로를 겪을 것이 우려된다.
사업지주회사제도는 인위적인 기업구조 개편을 불러와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보다도 기업에게 부담이 더 큰 규제이며, 정부가 기업집단에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전략 중 하나인 조직선택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사업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 규제와 마찬가지로 지분정리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비상장주식 평가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중핵기업대상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경우 출자여력이 있는 기업은 중핵기업이기 때문에 중핵기업의 출자를 제한하면 출총제와 같이 기업의 투자활동을 제약한다.
이밖에 가공출자액(재출자액) 규제는 현재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출자와 피출자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재출자 규제는 현행 출총제와 동일한 효과가 있으며, 기업집단별 총출자제한제도는 출자한도를 초과할 경우 법인격이 없는 기업집단에 해소 의무를 부과하는 곤란한 문제를 안고 있다.

폐지시 우려되는 부작용, 현행 제도로 해소 가능

먼저, 소유지배구조 왜곡으로 인한 대주주의 사익추구 문제는 현재 시장기능을 통한 외부통제 시스템과 기업내 이사회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고, 소수주주권 강화, 부당지원행위 규제, 대규모 내부거래 및 비상장회사 중요사항 공시 등 사전적 차단장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방지가 가능하다. 아울러 주주대표소송, 증권집단소송, 공정거래법상 사소제도 등 사후적 구제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주주의 사익추구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한편, 경제력집중을 통한 경쟁제한 문제는 경쟁 제한적 결합금지 등 기업결합 규제,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부당행위 계산 부인 등으로 사전 차단이 가능하다. 부실한 계열사 출자로 인한 동반부실화 문제는 채무보증 금지, 주채무계열제도 등으로, 가공자본 형성을 통한 불건전한 기업구조 문제는 상호출자 금지, 공시제도, 결합재무제표 작성, 회계감사제도로 해소가 가능하다. 특히, 출총제가 폐지되면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해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가 있으나 이미 중소기업에 대한 출자나 중소기업 인수를 제한하는 제도들이 있는데다 대기업 투자영역이 중소기업 영위 업종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크게 강화된 데다, 출총제가 폐지되어 대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출이 활발해지면 결국 중소기업의 창업이 늘어나고 원자재 공급, 부품소재 등과 관련된 중소기업의 성장이 조장될 전망이다.
출총제 폐지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투자활성화, 일자리창출, 그리고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동 제도를 폐지하면서 이와 유사한 사전규제적 성격의 제도를 대안으로 도입하는 것은 핵심 투자규제 폐지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봇물처럼 도입된 투명성 관련제도 및 시장견제 장치 등은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비상장사 주요 사항 공시,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고, 효율적인 경영활동이 힘들 정도로 기업집단 규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제도들이다. 이런 다양한 제도들을 두고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과잉규제의 성격이 커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활력 제고라는 선진국과 경쟁 대상국들의 정책기조와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선진화와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되살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고용불안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는 더 이상 논란이 필요 없는 시급하고 긴요한 과제이다.

(ysy@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6년 11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