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도입, 국익차원에서 접근하자

[경제시론] 2011-08-18 | 전경련 산업본부 미래산업팀장 김태윤

최근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법률안을 심의하기 위해 여야 의원 18명이 참여하는 기후변화녹색성장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산업계는 규제개혁위원회 권고사항과 같이 배출권거래제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국민경제의 편익분석도 없고 경쟁국도 도입을 꺼리기 때문에, 2015년 이후에나 도입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2월 라디오 연설에서 “산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여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예정이며, 또한 국제동향과 산업경쟁력을 감안해서 유연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말만이 아닌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 기후변화녹색성장특별위원회에서는 배출권거래제의 도입 시 발생하는 피해와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최근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인 8억 1,300만 CO2톤 대비 30%인 2억 4,400만 CO2톤을 감축하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였다. 이런 목표관리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한 규제이나, 산업계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힘들지만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기도 전에 새로운 규제인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산업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시장에 기반한 제도로 목표관리제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실행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는 불완전한 제도이다.
첫째, 시장에서 배출권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정부가 기업에 할당하는 목표량이기 때문에 선순환 기능을 하기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만약 업체가 노력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했다면 시장에서 배출권 수요는 감소하고 이는 배출권 가격 하락을 가져온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에서 거래 활성화를 위해 할당을 더욱 축소할 소지가 높기 때문에 기업에는 감축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둘째, 배출권이라는 단일 품목을 470개 기업이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배출권의 부족과 과잉으로 인해 가격의 급등락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배출권이 부족하다는 정보가 시장에 알려지면 수요는 있으나 공급은 없기 때문에 배출권 가격은 패널티 한도까지 급등할 것인데, 현재 법안에서는 패널티 상한선도 없어 무제한으로 가격이 상승할 소지도 있는 것이다.
셋째, 외부시장 변동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변동이 심하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총량제한 시에 배출권 과부족의 원인은 에너지효율 변화보다는 경기변동에 따른 생산량 변동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EU 철강사의 경우에도 2005~2007년 사이에는 중국의 수요 확대로 생산량 증가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8% 증가하였으나,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배출량이 26% 감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글로벌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주요 온실가스 감축의무국 중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고 있는 곳은 EU와 뉴질랜드뿐이고, 미국?일본?호주 등은 도입을 철회 또는 지연하고 있으며, 중국은 시범사업을 한다고는 하나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한 전력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LNG 및 화력발전소를 건립할 것이기 때문에, 교토의정서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보도하였다.
전 세계 인위적인 CO2 배출량 중 27%가 전력 생산에서 발생할 정도로 전력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가장 크고 빠르게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다. 그러나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고 원자력을 대체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온실가스 삭감에 원래 소극적인 미국, 원전사태 수습에 바쁜 일본은 물론 경제성장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이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협상을 쉽게 타결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총 배출량의 1.7%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문제인 지구온난화 대응에는 큰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2020년 BAU 대비 30%인 2억 4,400만 톤을 전부 감축한다고 해도, 이는 2009년에 중국이 배출한 77억 톤의 열흘 분량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요국이 동참하는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행동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만 강제적으로 감축규제를 한다는 것은 지구온난화 대응에 효과는 없고 감축에 따른 큰 경제적 손실만 가져오는 그릇된 정책적 판단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산업계의 비용부담도 큰 문제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국내 주요 업종별로 최대 8.8%까지 생산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생산 감소는 산술적인 계산이지만 전자 6.9만 명, 자동차 7.4만 명, 석유화학 4.7만 명, 철강 2.0만 명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정도로 파급효과가 큰 것이다.1)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0년 국가 전체 감축 잠재량은 22.9%에 불과하고, 감축 평균비용은 CO2 1톤당 46만 원이며, 한계비용은 1톤당 2.4억 원에 달할 것으로 발표하였다. 즉, 정부의 목표인 3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계는 해외에서 배출권을 구매해 오던지 1톤당 2.4억 원이 넘는 한계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력거래소는 탄소배출권 모의거래를 수행한 결과 탄소발생량은 6% 감소하였으나, 발전원가가 20% 상승하여 소비자는 전기요금을 8% 더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전망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규제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발적인 노력이 먼저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규제는 기술개발에 투자할 자원을 오히려 탄소배출권 구매에 과도하게 지출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만약 배출권거래제가 녹색산업 선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그렇게 효율적인 제도라면, 지난 10년 간 EU를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이 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저탄소의 음모>를 저술한 거우훙양도 탄소배출권은 신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기술이 발전한 선진국이 개도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판하면서, 한순간 플라자합의로 오랜 경제침체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산업계는 원가절감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감축 잠재여력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므로 과도한 감축압박은 기업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추가적인 규제보다는 가정 및 사무실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기제품의 플러그 뽑기, 고효율 전등 교체, 에코 드라이빙 등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노력이 먼저 필요한 상황이다.

1) 산출근거는 2009년 업종별 생산액, 생산감소율, 업종별 취업유발계수를 기반으로 계산

(kty@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8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