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도입 논의의 현황과 문제점

[경제시론] 2011-01-11 | 전경련 산업본부 미래산업팀장 추광호

최근 정부는 2013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한다는 방침 하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안에서 밝힌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유는 ①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서 도입 근거규정을 두고 있고, ②비용효과적인 방법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③향후 국제 탄소시장에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 배출권거래의 참여 주체가 될 기업들은 거래제가 도입될 경우 나타나게 될 많은 문제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즉, 제도 도입 시의 효과에 대한 검증이나 국민경제·기업경영에 미칠 영향 분석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동일한 취지의 규제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가 도입되어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전혀 다른 규제체계를 가진 배출권거래제가 추진되는 것은 산업계에 이중의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EU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 관련 논의가 오히려 후퇴하고 국제 기후변화협상도 교착상태에 있는데,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비용부담이 될 수 있는 제도를 우리가 서둘러 도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에 미칠 영향 분석이나 제도에 대한 검증 미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하고, 실제 배출량 대비 잉여/부족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업체에 대하여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것인데, 이는 결국 철강·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의 원가상승과 직결되게 된다. 특히 이들 업종들은 대부분 국제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 원가상승은 국제 가격경쟁력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배출권거래제 실시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증가로 인해 철강, 화학, 기계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연간 매출이 약 12조 원(CO₂ 1톤당 4만 5,000원 기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적용과정에서도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 업종별·기업별로 배출권의 적정 할당량에 대한 갈등이 불가피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배출량의 산정·보고·검증(MRV : Measurement, Report & Verification)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고 신뢰성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정 배출량을 둘러싼 대립이 불붙을 것은 자명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 차원의 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하고 있는 EU의 경우에도 할당량을 둘러싸고 EU위원회와 각국 정부 간, 혹은 각국 정부와 기업 간에 수많은 소송이 발생하였다. 또한 배출권거래제는 예상치 못한 경기변동 발생 시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데, 경기활황 시에는 생산량 증가에 따른 배출권의 부족, 불황 시에는 생산감소에 따른 잉여 배출권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는 퇴출기업은 생산량 감소분만큼의 배출권을 판매하여 이익을 얻는 반면, 경쟁에서 이긴 우수기업은 생산량 증가를 위하여 배출권을 새로 구매해야 하므로 비용이 발생하게 되어 시장경쟁의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 미비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산정·보고·검증(MRV) 시스템의 구축이 필수적이나, 우리의 경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온실가스 데이터베이스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제정을 통해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도입하기로 하였고, 2012년부터 이를 시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 목표관리제 지침을 제정 중에 있으므로, 이 지침에 따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엄격한 산정과 이를 종합·관리할 국가 온실가스 종합관리시스템 구축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업계가 이번 입법예고안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2010년 초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도입을 위한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고 결국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목표관리제를 실행하기로 하였는데,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논의 중인 배출권거래제는 기존의 온실가스 목표관리제에 따른 행정체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프레임으로 짜여지고 있어 이 같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기후변화 국제협상과 주요국의 도입 논의 동향 고려 필요
정부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이유 중 하나로 녹색성장기본법상의 근거규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녹색성장기본법 제46조 제1항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따라서 의무사항은 아니다), 특히 제3항에서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시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상을 고려해야 하고’, 또 거래제 도입으로 인해 ‘국제경쟁력이 현저히 약화될 우려가 있는 업체의 경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 기후변화 협상은 오히려 교착상태에 있으며, 최근 개최된 제16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도 선진국-개도국 간 이견차가 큰 주요 쟁점(교토의정서 연장 여부, 의무감축국의 실질적인 감축목표에 대한 합의 등)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기금 조성 등 협상지속을 위한 선언적 합의만 이루어진 상황이다.
나아가 현재 세계적으로 배출권거래제도를 도입한 곳은 EU 정도에 불과하며, 미국, 일본, 호주 등 도입을 검토하던 국가들도 도입 논의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중국, 대만 등 우리의 주요 경쟁국들은 도입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주요 제조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가 자명한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성급한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비의무감축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기후변화 협상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ck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1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