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법안’의 주요 쟁점과 보완과제

[경제시론] 2003-11-18 | 신종익 신종익

최근들어 대통령과 국회 제1당에서 ‘증권집단소송법’을 이번 국회에서 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증권분야 집단소송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집단소송은 애초에 도입하느냐, 마냐의 논쟁이었지만, 경제계가 금년초에 원칙적 수용 입장을 표명한 이래 쟁점은 몇 가지로 좁혀졌다. 현재 정당간 혹은 경제계와 시민단체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사항은 원고의 담보제공과 과거에 발생한 회계분식 처리, 그리고 소송허가 요건중 원고들의 ‘주식가액 1억원 이상’ 정도이다.

증권집단소송 : 소수주주만의 제도가 아니다

이 같은 입장 차이는 증권집단소송제의 성격이나 목적을 달리 보는데 기인한다. 경제계와 같이 소송요건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측은 대다수의 주주와 회사, 그리고 협력회사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일부 시민단체와 같이 보완에 반대하는 측은 소수주주의 소송편의를 중시한다.

먼저, 증권집단소송의 성격을 보자. 기업이 송사에 휘말리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피해는 해당기업이외에 대다수의 주주와 채권자, 종업원, 협력회사와 종업원, 거래처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도 돌아간다. 이 같은 점을 노리고, 재판을 끝까지 하지 않으면서 화해금을 노리는 소송전문가들도 많다.

그런데, 기업에 관한 소송에는 소수주주의 권익보호도 중요하지만, 말 없는 대다수 주주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회사법이 발전하면서 항상 고민해왔던 사안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 상법에 확립된 소수주주의 대표성이다. 상법과 증권거래법에서 주주대표소송이나 이사해임청구권 등과 같이 회사를 상대로 하는 소수주주권의 행사에 일정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소수주주들이 최소한의 대표성을 확보하라는 취지이다. .

둘째, 원고의 담보제공 의무를 보자. 일부 시민단체들은 원고에게 담보나 공탁금을 제공하도록 하면 소수주주들은 담보제공 능력이 없으므로 사실상 소송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송에는 소수주주들만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장사 주식의 50% 이상은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다.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주가가 하락했다면 소수주주들보다 이들의 피해가 더 크다. 그래서 증권집단소송은 사실상 이들이 주도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얼마 만큼의 담보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기관투자가들이 경영층의 위법행위로 인해 주가가 하락한 점을 알고도 소송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배임행위를 하는 셈인데, 소송을 피할 리가 없다.

기업소송에서 담보제공은 국제기준

증권집단소송은 대표소송보다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법원이 원고에게 담보제공 명령은 물론, 남소에 대한 제재조치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고에게 담보제공을 부과하는 것은 증권집단소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소송이 미치는 엄청난 파급영향을 감안하여 상법에서는 이미 이 제도를 활용되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상법 403조), 주주총회 결의 취소소송(상법 377조), 회사 해산명령 청구소송(상법 196조) 등이 대표적이다.

상법은 원고에게 무조건 담보를 제공하라고 하지 않는다. 원고가 악의를 가졌다는 것을 피고 기업이 소명하게 하여 법원이 그 여부를 판단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증권집단소송의 원고에게 상법에서 규정하는 수준의 담보제공 의무를 부여하도록 상법조항을 준용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이다.

셋째, 과거의 회계분식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 법안에서도 증권집단소송법의 시행이전에 발생한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소송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는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하다. 그런데 회계처리는 주가조작이나, 공시와 다른 특성이 있다. 어떤 기업이 5년전에 분식회계를 했고, 그 이후에는 ‘기업회계기준’대로 회계처리했더라도, 5년전의 분식을 수정하지 않는 한 회계분식한 것으로 간주된다.

과거의 회계분식은 제외해야

즉, 현재의 부칙 조항으로는 과거의 회계분식을 완전히 제외할 수 없다.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칙에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불소급의 원칙이나 부칙의 취지에도 부합된다. 한편, 과거의 회계분식은 증권집단소송에서 제외하더라도 피해자는 민사소송으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물론 ‘공동소송’ 제도를 활용하면 다수 피해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넷째, 소송요건중 ‘주식가액 1억원 이상'의 문제이다. 원고들의 보유주식 가치가 3000만원, 즉 1인당 60만원이면 상장사의 85%에 소송할 수 있다. 원고들의 주식가액이 1억원이면 상장사의 93%에 증권집단소송을 제소할 수 있다.(현재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49개사에 불과함) 그런데도 국회에서는 일부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하여 주가가 높은 회사에 대해 소수주주들이 쉽게 소송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지분율 0.01%를 적용했을 때 주식가액이 너무 높은 경우 보유주식액이 1억원 이상이면 소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가가 47만원인 삼성전자에 대해서 원고들이 212주, 즉 1인당 5주를 보유하면 소송할 수 있게 하였다. 이같은 내용이 소송전문가들의 소송을 유발시키고, 우량회사들을 소송 표적으로 만든다. 물론 ’법앞의 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주가가 하락하고, 소수주주들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투자가들에게 함께 소송하자고 하면 이들이 가만 있을까? 오히려 이들이 소수주주보다 먼저 소송에 나설 것이다. 우량회사일수록 기관이나 외국인 지분이 더 많은데, 이들에게 지분율 0.01% 확보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

기업의 흥망을 소수주주 50인이나 회사 주식 0.01% 정도 보유한 주주들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소수주주들이 소송을 하더라도 대다수의 건전한 투자가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동참을 촉구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또한 그것이 주식회사의 원리이다.

증권집단소송이 남발되지 않도록 원고의 담보제공, 과거 분식회계의 제외, 지분율 0.01%의 철저한 적용 등의 보완장치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