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혁 로드맵”,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시론] 2003-11-10 | 신종익 신종익: 향후 대기업개혁의 이정표가 될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로드맵에서 시장개혁의 목표를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시스템의 구축’으로 정하고, 정책방향은 ‘정부의 직접규제에서 시장감시로, 시장감시 확립을 위한 유인부여’ 등으로 설정했다. 시장경쟁을 제고하기 위해 규제개혁과 카르텔 규제를 강화하고, 투명 및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핵심은 출자총액규제의 존속

하지만, 시장개혁 로드맵의 핵심은 존폐논의가 끊이지 않는 ‘출자총액규제’를 존속시킨다는 점이다. 규제개혁이나 카르텔 차단은 공정위의 상시업무로 새로운 것이 아니며, 투명?책임경영은 재정경제부나 법무부 등 주로 다른 부처의 업무이며 이들 부처의 입장과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드맵은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기업성과가 나쁜 것이나 기업에 대한 견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나, 주가가 저평가받고 있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등을 소유-지배의 왜곡 탓으로 보고 있다. 물론 소유-지배가 왜곡된 배경에는 계열사 출자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내용을 보면 이번 로드맵이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관련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시장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시장개혁 로드맵의 목표인 시장경제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시장에서 결정되고 형성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정위는 바람직한 시장이나 기업형태를 미리 그린 후에 기업이 그렇게 하도록 규제하려고 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자. 먼저,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체제를 개편하려고 한다. 현재의 기업집단이 독립기업이나 소그룹으로 분화하거나,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구 일본재벌처럼 브랜드를 공유하는 느슨한 연계체제로 가는 등 구체적인 모습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집단은 정부정책에 힘입어 시장에서 형성된 산물이다. 개발년대에 정부의 수입대체 산업정책이나 공기업 민영화, 부실기업 정리정책 등에 의해 기업집단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외국기업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우리실정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조직이라는 것도 국내외 시장에서 검증되었다. 실제로 기업집단을 형성하지 못한 전문기업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거나 도태당했다.

둘째, 현행 ‘출자총액규제’를 존속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이 타회사에 출자하는 것은 위법한 행위가 아니다. 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만들고, 국내외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새로운 분야의 사업에 진출하고,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 회사를 분리하여 구조조정하는 등 기업의 각종 활동이나 경영전략을 수행하는데는 출자가 수반된다. 그래서 출자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공정위도 왜 출자한도가 순자산의 25%이어야 하며, 자산 5조 이상의 그룹만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답하지 못할 것이다.

출자규제가 ‘87년 처음 도입할 당시에는 금융건전성 규제나 기업에 대한 감시장치가 미흡하여 그나마 필요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확 다르다.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 투명성, 금융감독기능이 크게 강화되었고, 다른 규제와 중복된다.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외국자본이 증권시장의 40%를 넘어서고, 우리 기업이 외국자본에 경영간섭이나 M&A의 위협을 안고 있거나 유린당하며 국부가 유출되어도, 출자규제로 관련 기업들은 그냥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출자와 지배구조를 연계시켜, 지배구조가 개선될 때 까지 출자규제는 존속되어야 한다고 한다.

로드맵이 ‘반시장적’이라는 지적

셋째, 로드맵은 시장의 다양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출자규제를 받지 않으려면’ 이라는 단서는 있지만, 사실상 대기업은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를 도입하고, 의결권 승수(실제 행사하는 의결권을 자산의 지분으로 나눈 것)를 2미만으로 낮추라고 한다. 그런데 집중투표제는 국제기준이 아니다. 지구상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나라는 러시아, 칠레 등 3-4개국에 불과하며, 미국에서도 6개주에서만 실시한다. 더욱이 우리는 이 제도를 이미 도입했다. 단지, 이사회에서 경영진과 소수주주와의 대립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주주들의 자율성을 중시하기 위해 기업이 정관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투표나 서면투표도 미국의 "Pfizer"(‘비아그라’를 개발한 제약회사)와 같은 초우량기업들이 기업 홍보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자율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도 소수주주 권익보호에 충실한 회사들이 있고, 의결권 승수가 2보다 높아도 국제기구로부터 지배구조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들도 많다.

이상과 같은 규제적인 내용들로 인해 시장개혁 로드맵이 오히려 ‘반시장적’이라거나, ‘출자총액규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정보공개와 다양성 인정

‘소유와 지배의 괴리’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자본을 활용하여 사업하는 주식회사에서 대주주나 경영자는 자신의 지분보다 더 많은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보장받고 있다. 이 점이 주식회사가 가진 유인이며, 그래서 회사형태중의 대부분이 주식회사이다. 설령, 출자총액규제를 하더라도 소유-지배 괴리가 해소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하면 기업집단의 기업집단의 소유지배 구조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최선의 방법은 로드맵이 제시한 것처럼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괴리도 등의 정보가 공개되면 투자가들이나 금융회사들은 이를 참고하여 투자여부나 규모를 결정한다. 소유-지배 괴리도 때문에 자금조달이나 주가 저평가로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은 괴리도를 낮출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로 실제보다 나쁜 평가를 받는 기업들은 집중투표제나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것이다. 괴리도가 높더라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높이 평가받는 회사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회사가 투자가를 잘 보호하며 그들의 재산을 증식시켜 줄 것인지는 정부보다 시장참여자들이 훨씬 더 잘 안다.

모든 기업들이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갖기 보다는 서로 다른 지배구조를 가질 때 지배구조에 관한 경쟁이 이뤄지고 지배구조가 계속 발전하게 된다. 시장에서 다양성이 없을 때 경쟁도 없고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은 이상적인 제도로 보이는 집중투표제가 10년후에는 매우 문제가 많은 제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제도가 더 좋은지의 판단은 시장이 제일 잘 할 수 있다. 지배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대주주나 경영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재산의 유용과 같은 위법행위는 형법, 세법, 증권거래법 등으로 적발하여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을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 지배구조에 관한 영미식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남귤북지’가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제도를 100여개 이상 도입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별로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그래서 OECD도 지배구조에는 모범답안이 없다고 한다.

시장에는 오류가 없다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첩경은 경제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참여자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기규칙을 만들어 집행해야 한다. 공정성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며, 투명성은 경기규칙이나 관련 정보를 누구든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본연의 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나 간섭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시장질서 확립에 더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부도 시장의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해야 한다는 점이다. 뭔가 무질서하고 미흡해 보이는 것이 시장이다. 하지만, 기업에게 시장(고객)은 왕이며 오류가 없듯이, 정부에게도 시장은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