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의결권 행사 규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경제시론] 2005-10-14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광석

정부는 국민연금을 주식에 투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주식의 의결권을 제한이 없이 행사할 수 있는 반면 대기업집단 금융계열사의 주식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계열금융사의 보유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불특정 다수 고객의 자금으로 계열사 경영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 대기업집단 계열금융회사의 주식의결권 제한여부는 제도의 지속성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이해관계가 아니라 합리적인 논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선관주의 관점에서 금융기관의 주식소유한도를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신탁자금으로 금융회사가 자산운용규제 하에서 획득한 주식에 대해 정부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본주의 경제제도에서 주식의결권은 주요 재산권 중 하나다. 물론, 개인이 소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이 자금을 금융회사에 신탁하는 경우는 다르다. 투자자의 신탁자금을 주식에 투자하여 얻게 된 주식의결권을 금융회사가 행사하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개인이 투자자금을 신탁할 금융회사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투자자금의 잠재적 의결권도 그 금융회사에 신탁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신탁된 의결권이 잘못 행사되어 신탁자금의 수익성이 저해되었다고 판단하면 투자자가 신탁자금을 다른 금융회사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회사에 신탁된 주식의결권은 제한 없이 행사되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집단 계열금융사가 자기 계열사의 지배를 목적으로 한 주식보유와 그 의결권행사로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생명보험회사의 지급여력비율과 자산운용수익율의 경우에 오히려 대기업집단 계열보험사들이 다른 보험사들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정부가 주장하는 문제는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투자자의 자율에 의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또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의 목적이 불특정 다수의 고객의 자금으로 타회사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자산운용규제에 의해 금융회사에 대한 주식소유제한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집단 계열금융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소유주식에 대해 재산권인 주식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한편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는 그 성격이 다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강제가입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금이전을 통한 잠재적 의결권이 국민연금에 신탁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투자와 회수가 자유로운 금융자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과 강제로 조성된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을 허용하는 정부의 정책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사실 미국과 영국의 전국민대상 공적연금은 주식투자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금수급의 문제로 말미암아 안전성보다는 수익성을 강조하여 캐나다의 경우처럼 주식투자를 허용했다. 이것을 일단 수용하면 수익성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수익성과 관계없이 주식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우려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계속 미칠 것이라고 예상된다. 더욱이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를 통해서 기업경영권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의 공정한 행사가 보장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금융회사와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를 모두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제도개선 방향이다. 단 시장규율이 적용되지 않는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는 공정하고도 신뢰할 수 있는 운용기관을 설립한 후에 허용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정부규제 보다는 적극적인 대내외개방을 통한 경쟁압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