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문제점과 과제

[경제시론] 2011-03-16 | 전경련 산업본부 미래산업팀장 김태윤

정부는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국가 목표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Cap and Trade)를 2015년부터 시행하는 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고, 조만간 국회로 법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산업계는 경제5단체를 포함한 18개 업종별 단체 공동건의문을 통해 배출권거래제는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현재 시점에서는 도입 논의가 시기상조이며 경쟁국 도입 여부 등을 판단하여 2015년 이후에나 도입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녹색성장의 목적이 아닌 규제 위주의 정책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국가경제에 부담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시장기반형 인센티브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의 얼리 무버(Early Mover)로서 조기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산업계와 많은 논의를 거쳐 시행시기 일부 연기,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 상향조정, 과태료 인하 등의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을 시에 국민경제와 기업경영에 발생할 수 있는 영향 분석이 불확실하며,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비용상승으로 인한 매출액과 고용 감소 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은 특정 분야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아야 하며, 특히 국제적으로 공평한 경쟁조건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나, 배출권거래제는 이론적으로 약점이 있는 제도이다. 기술개발, 원가절감 등의 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에게는 배출권 구입이라는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생산량 저하로 발생한 잉여의 배출권을 판매하여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불합리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1950년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올해에는 세계에서 8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리 경제의 발전에는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힘을 합쳐 부족한 자원과 작은 내수시장을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우수한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의 제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GDP 대비 82.8%로 중국 43.3%, 일본 20.8%, 미국 18.7%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정책수립 시 수출과 제조업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산업구조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쟁국이 도입하고 있지 않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주요 온실가스 감축의무국 중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고 있는 곳은 EU와 뉴질랜드뿐이고, 미국·일본·호주 등은 도입을 철회 또는 지연하고 있으며, 중국·대만은 도입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작년 12월 각료회의에서 배출권거래제의 2013년 도입계획을 사실상 연기하였다. 일본 정부의 철회배경에는 일본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배출권거래제가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부 금융자본에 의한 머니게임으로 변질되어 투기시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들이 고려되었다.
산업계의 비용부담도 큰 문제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국내 주요 산업의 매출이 6.7~12조 원 감소될 것으로 분석하였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5.6조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였다. 배출권거래제는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일부 기업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후방 부품소재, 조립, 서비스 분야까지 파급효과가 미치기 때문에 중소기업, 소비자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로 인한 추가비용이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부득이하게 제품가격으로 전가되어 물가상승, 매출저하, 일자리 감소 등의 악순환을 발생하여 녹색성장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우리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다.
배출권거래제를 조기에 시행하게 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 관리하는 인프라 측면에서도 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선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자사에서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미래에는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보고·검증(MRV : Measurement, Report & Verification)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배출권은 기업에게 무형의 자산이자,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채이기 때문에 부문별·업종별·기업별로 적정한 배출량이 할당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기업 간의 소송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 실제 독일에서는 2005년부터 3년간 배출권할당량 결정 등과 관련하여 약 1,000여 건의 법률소송이 제기되었다.

규제가 아닌 녹색성장을 위한 제도 필요
산업계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대해 힘들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이미 산업계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으며, 전력·통신·자동차 회사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전력소비를 효율화하는 지능형전력망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녹색설비를 도입하고 제품의 개발부터 폐기까지 전주기적 관리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등 이미 자발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보다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 달성만을 위하여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배출권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에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친환경제품 보급 확대 등의 정책이 온실가스 감축과 미래 성장동력인 녹색산업 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책들이다. 경쟁국에서 도입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가 적용될 경우 국내산업의 경쟁력 저하뿐 아니라 수출, 고용, 국민생활에 심각한 부작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속가능한 녹색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녹색성장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찾아서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녹색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부, 산업계, 국민이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kty@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3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