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 필 제도 도입, 그 의미와 과제

[경제시론] 2009-12-09 | 전경련 산업본부 기업정책팀장 유환익

  포이즌 필(poison pill)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경영권 방어수단 중 하나이다. 기업은 기업가치를 파괴하는 기업인수 시도가 있을 때 공격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에게 저가로 신주를 발행하게 된다. 그러면 공격자가 취득해야 할 주식수가 늘어나게 되고, 공격자는 기업을 인수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공격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공격의지를 꺾어 경영권을 방어하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이러한 기업가치 제고적 경영권 방어수단이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개념 정립이 잘못되어 있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통상 우리나라에서 ‘독약처방’이라고 해석되는 포이즌 필의 원래 이름은 ‘주주권리 계획(Shareholder Rights Plan)’이다. 즉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주주들의 의사에 따라 사전에 수립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계획은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만 활용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독약’이란 기업가치 파괴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정상적인 주주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포이즌 필의 정확한 개념에 비추어 볼 때, 포이즌 필이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이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포이즌 필은 모든 ‘적대적(hostile) M&A’에 대한 방어수단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파괴하는 ‘약탈적(bust up) M&A’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방어수단에 불과하다.

국가경제에 양약(良藥)이 될 포이즌 필

  포이즌 필이 도입된다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양약(良藥)이 될 수 있다.   먼저 국내 M&A 시장에서 건전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과거 소버린 등 외국계 투기자본들은 우리나라에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막대한 시세차익만 챙겨갔다. 소위 먹튀 자본으로 불리는 외국의 투기성 자본은 국부유출 등의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 반면, 우리 기업들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실례로 소버린은 국내에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2년 동안 투자원금의 600%가 넘는 1조 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다음으로 적극적 투자환경 조성이다. 언뜻 경영권 방어와 투자가 상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골키퍼가 있어야 선수들이 맘껏 싸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우리는 현재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은 경영권 불안으로 인해 투자보다 과다한 자사주 매입이나 현금 확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KOSPI 시장에서만 2006년에 7조 3,000억 원, 2007년에 6조 4,000억 원이 자사주 매입에 사용되었으며, 2009년 상장사 557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74조 4,000억 원, 10대 그룹 현금 유보율은 945%에 이른다. 만일 2007년 KOSPI 시장에 투입된 자사주 매입비용 6조 4,000억 원이 투자에 활용되었다면 삼성전자와 같은 일자리(2007년 인건비 총액 5조 2,000억 원)가 통째로 생기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하였을 것이며, 현금성 자산이 모두 투자에 활용되었다면 KOSDAQ 시장(2009년 시가총액 73조 원)이 하나 더 생기는 효과가 생겼을 것이다. 물론 투자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 하나가 도입되었다고 자사주 매입 비용 등이 모두 투자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포이즌 필 도입은 위축될 수 있는 투자심리를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여건만 조성된다면 투자확대 효과는 클 것이다.
  한편, 포이즌 필은 다음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도입을 반대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로 보 인다.
  첫째, 포이즌 필이 도입되면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진 견제가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즉, 대주주 지배권을 영속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포이즌 필은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약탈적 M&A만 제한하는 것이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어떠한 M&A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무능한 경영진이 포이즌 필을 발동했다고 하더라도 주주들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공격자의 주식인수에 응해버리면 자연스럽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알고 있는 경영진의 입장에서 포이즌 필을 단순한 경영권 유지를 위해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최근 논의되는 바에 의하면, 포이즌 필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얻어야 한다. 대주주의 지분이 적고 지분분산이 잘 되어 있는 기업 상황에서, 주총에서 70% 가까운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포이즌 필이 단순한 경영권유지 목적으로는 도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특혜성 시비가 있을 수 있는 제3자 배정도 금지되기 때문에 특정주주를 위한 특혜를 부여할 수 없다. 설사 남용하더라도 발행절차, 방식 등이 부당하면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금지 가처분이나 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경영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기 때문에 남용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외국인 투자나 M&A 시장 위축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중 그린필드형 투자는 경영권 방어수단과 전혀 무관하며, 우호적 방법에 의한 M&A 투자 역시 방어수단 유무와 무관하기 때문에, 방어수단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일부의 기업가치 파괴적 M&A이나 이는 오히려 규제해야 할 대상이다. 실증적으로 보더라도 2005년 포이즌 필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일본은 오히려 2006년 동경증권거래소에서 외국인 투자비중이 역대 최대인 28%를 기록한 바 있으며, 가장 강력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미국은 전 세계 M&A의 46%를 차지(2005)하고 있고, 미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규모(FDI) 역시 1,929억 달러로 전 세계 1위(UNCTAD, 2007)를 차지하고 있다. 포이즌 필 도입과 외국인 투자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포이즌 필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失)보다 득(得)이 많은 제도로, 포이즌 필의 도입은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포이즌 필을 도입하여 우리 기업의 역차별적 족쇄를 풀어주고 동등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30%나 감소했던 M&A 시장이 최근 경제회복세와 더불어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우리 기업에 대한 약탈적 M&A 시도도 다시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포이즌 필은 조속히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경영권 경쟁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및 외국기업들과의 역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어 있지 않은 차등의결권 등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yhi@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9년 12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