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 큰 시장, 그리고 규제혁파
- 시장경제와 인간이성의 한계
왜 시장경제가 중요한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각도로 연구되어 왔다. 시장경제는 빈곤을 해소하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정의로운 체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이다. 고용문제도 해결하고 빈곤문제도 해결해 주는 것이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탁월한 경제적 성과, 이것은 역사적 사실도 또렷하게 입증한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처럼 시장경제의 원칙을 확실하게 지킨 나라는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독일이나 스웨덴 또는 프랑스처럼 그 원칙을 위반하면서 복지나 평등, 분배를 중시하는 나라는 실패했다. 시장경제의 탁월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큰 시장 또는 탈규제가 필수라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성과로만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으로도 정당화하고 있다. 즉,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자유는 대단히 고차적인 도덕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지 않고 기만이나 사기를 하지 않는 행동, 그리고 약속을 위반하지 않는 행동, 이런 행동은 대단히 고귀한 도덕적 행위이다. 시장경제가 소중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시장경제는 이런 도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규제는 이런 도덕을 위반하기 때문에 탈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존재이유에 대한 이 같은 논거는 시장경제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런 논거에는 약점이 있다. 경제적 번영이나 개인적 자유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논증은 설득력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옹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새로운 논거가 필요하다. 그 논거가 시장경제는 인간이성의 치명적 약점을 극복해 준다는 논거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타인들과 협력과 분업 속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와 어떻게 분업과 협력을 할 것인가? 이를 알아내는 방법은 청각, 시각, 그리고 촉각 등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은 그 능력에서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멀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희망, 취향, 그들의 행동 등을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의 발달은 대단히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좁은 범위를 넘어서면 쓸모가 없다. 이것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우리의 이성의 한계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각기관에만 의존하는 분업과 협력의 범위는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직접 알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분업이 가능할 뿐이다. 교환도 서로 얼굴을 아는 ‘대면사회(face to face society)’에서나 가능하다. 인류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흥미롭게도 인간의 감각기관은 부족끼리 소규모의 그룹을 지어 수렵채취로 생활하던 시기에 적합하게 발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직접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분업하고 협력하고 그리고 교환하고 있다. 심지어 분업관계가 범세계적이다.우리의 감각도구를 가지고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사람들과도 거래하고 분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초월한 분업과 교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인물은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자’로 알려진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이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사유재산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알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심지어 범세계적으로까지 확장된 분업과 교환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확장된 분업과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런 분업과 교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가지고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관한 지식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커니즘이다.
시장경제는 공교롭게도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하나는 가격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규칙이다. 복잡다기한 가격구조는 수백만 명, 또는 수천만 명의 경제주체들의 생각과 행동방식, 취향들을 전부 수집·가공하여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수행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격들이 수행한다.
시장경제는 가격 이외에도 복잡다기한 행동규칙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타인들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계약을 위반하는 행동 등 보편적으로 금지될 행동들을 기술한다. 이로써 행동규칙들은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방식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그런 행동규칙들은 수세대를 거쳐 사람들이 삶의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 그 어떤 감각기관을 가지고도 접근하기가 불가능한 경험들을 반영한다.
이와 같이 가격구조와 행동규칙들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에 관한 지식의 습득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그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거대한 의사소통체계’라고 말한다. 이 의사소통체계의 덕택으로 범세계적인 분업과 교환이 가능하다. ‘생물학적 진화’의 선물로서 우리의 감각기관에만 의존해야 했던 원시부족사회의 척박한 삶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게 한 것, 원시적인 야만적 삶을 극복하고 문명된 삶을 가능하게 한 것, 이것이 시장경제이다.
어떻게 이런 시장경제가 생성 발전되어 왔는가의 흥미로운 문제는 여기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장경제는 생물학적 진화의 선물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의 선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인류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쌍두마차가 있는데, 이는 언어의 발달과 시장경제의 발달이다. 그럼에도 문화인류학의 일각에서는 오로지 언어의 발달만을 강조하고 시장경제의 발달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에 관한 이런 인식은 경제 정책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이성이 완전하다면, 시장경제는 불필요하고 그 대신에 경제에 대한 규제와 계획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계획과 규제, 이것은 정부사람들의 감각기관에 의존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정부의 간섭은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작은 정부 큰 시장, 그리고 규제혁파이다. 시장경제에 대하여 경외감을 가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