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전면 실시의 의미와 과제

[경제시론] 2010-06-09 | 전경련 경제본부 노사정책팀장 고용이

  지난해 12월 4일, 노·사·정은 전임자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조활동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사용자와의 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의 유지·관리 업무에 대해서는 근로를 면제해주고 해당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는 타임오프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타임오프 한도 논의 경과 및 그 내용

  노·사·정 합의 결과를 반영한 개정 노동조합법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면제 대상과 한도를 결정토록 규정했고, 지난 2월 26일부터 공익위원(5인), 경영계 위원(5인), 노동계 위원(5인)으로 구성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구성·운영되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타임오프 외국사례 검토, 노사 현장 사례 및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치는 한편, 별도로 실태조사단을 구성하여 노조전임자의 노동조합 업무 수행 현황 등 ‘사업장 노동조합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4월 23일, 제11차 전체회의에서 노·사는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타임오프 한도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노사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합의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영계는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이 노조전임자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노조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노사협의로 타임오프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타임오프가 노조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분산 사업장 및 교대제 사업장에 대한 추가 타임오프 허용,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활동에 대한 타임오프 인정 등을 요구했다. 노사 간 합의 도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공익위원이 몇 차례 중재안을 제시하고 합의 도출을 모색했으나 노사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타임오프 결정 법정시한인 4월 30일 개최된 제16차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공익위원의 최종 중재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9표, 반대 1표로 타임오프 한도를 의결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타임오프 한도 의결 이후에도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과 일부 정치권의 재심의 권고 등 진통을 겪은 이후 노동부는 5월 14일 타임오프 한도를 고시했고, 이 한도에 따라 7월 1일부터 전국 사업장에서 타임오프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의결한 타임오프 한도는 조합원 규모가 적은 영세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현재 수준의 노조전임자 활동시간(수)을 보장하고, 조합 재정이 여유 있는 대규모 사업장은 전임자 임금의 노조부담 원칙에 따라 한도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이 같은 소후대박(小厚大薄)의 원칙에 따라 조합원 300인 이하 사업장은 실태조사 결과나 한국노총 자체 조사결과보다 더 많은 타임오프 한도가 인정됐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노조전임자의 대폭적인 축소가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노조전임자 수를 현재 105명에서 24명으로, 기아자동차는 현재 85명에서 19명으로 축소해야 한다. 이는 향후 대규모 사업장의 부자 노동조합은 노조전임자 임금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향후 과제

  소규모 노조에게 너무 많은 한도를 부여한 것은 유감이지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우리나라 노사관계 선진화의 디딤돌 역할을 할 타임오프 한도를 시한 내에 결정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7월 이후에는 타임오프라는 달라진 환경 속에서 기업의 유지·발전과 종업원의 복리 증진이라는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사가 협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결정과정에서 노동계가 보여준 모습을 되짚어 보면, 과연 타임오프 제도가 우리나라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디딤돌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민주노총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참여를 거부하다가 입장을 번복하고 참여했지만, 진지한 토의보다는 근면위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는 명분을 찾기에 급급했다. 한국노총은 여당과의 정책 연대를 무기 삼아 이미 결정된 타임오프 한도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노동계는 개별 단체협상을 통해 고시된 타임오프 한도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도입한 타임오프 제도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중요하다.
  우선, 정부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결정한 타임오프 한도가 사업장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확인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타임오프 제도가 산업과 기업현장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특히 6월 중 집중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계의 타임오프 제도 무력화 투쟁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대응해서 우여곡절 끝에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마련한 타임오프 제도가 첫걸음부터 비틀거리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여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한도 이내에서 타임오프를 부여해야 한다. 기업이 기존 방식대로 적당히 타협해서 타임오프 한도를 넘어선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우리나라 노사관계 선진화는 요원해질 것이다. 한 기업이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이를 근거로 다른 기업 노조가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된다. 따라서 다소 진통이 있더라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결정한 한도 이내에서 타임오프를 부여하고, 향후 이를 점차 축소하여 노조전임자 임금을 노조가 부담토록 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끝으로 노동조합도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이미 일부 노조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결정한 타임오프 한도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노동조합이 노조전임자 문제로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큰 흐름의 발목을 잡을 경우 국민들로부터 귀족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go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0년 6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