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소비 부진의 원인과 시사점

[경제시론] 2014-10-14 | 전경련 경제본부 경제정책팀장 김용옥

우리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민간소비 부진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1980년대 연평균 8~9%대의 성장을 하던 우리 경제는 불과 20여년 만에 2~3%의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였으며,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1년 4분기 이후 1~2%대의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과 경제성장률 간의 괴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와 2003년 신용카드 사태 당시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 아래로 하락한 적이 있었으나, 1~2년 후 경제위기의 여파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경제성장률 수준으로 곧바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2007년 4분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24분기 동안 3분기(’09년 2분기, ’12년 3분기 및 4분기)만을 제외하고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 고용부진, 고령화 등으로 소비위축
민간소비가 부진한 구조적 원인으로 첫째,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13년 말 기준 1,021.4조 원으로 명목 GDP의 71.5%에 달한다. 가계부문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2년 말 163.8%로 일본(128.8%), 미국(114.9%), 독일(93.2%) 등 주요국보다 높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신용등급 7~10등급 저신용자의 비은행금융기관 및 대부업 대출 비중이 증가하는 등 부채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가계부채로 원리금 부담이 증가하게 되면 소득증가가 소비로 연결되지 못하고 부채상환에 사용되어 소비부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일자리의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청년고용이 부진하고 은퇴 자영업자 수가 증가하여 가계소득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12년 임금근로일자리가 40.8만 개 증가하여 외형상 고용상황이 개선된 듯 보이지만, 근속기간 1∼3년 미만의 단기 일자리가 36만 개로 다수 비중을 차지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 일자리가 20.3만 개 증가한 반면에 20대 청년일자리는 오히려 8만 개 감소했다. 또한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자영업 진출이 확대되면서 자영업자 중 50대 비중이 ’07년 25.0%에서 ’13년에는 31.1%로 높아졌다. 특히 고용원이 없는 50대 자영업자가 ’07년 115.9만 명에서 ’13년 130.9만 명으로 증가해 영세 자영업자의 증가가 우려된다.

셋째, 세금·공적연금·사회보험 등의 비소비지출이 늘어나 가계의 소비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4대 보험 부담률 증가, 연금가입 확대, 가계대출에 대한 이자비용 증가, 조세 증가 등으로 지난 10년(’03∼’13)간 가계의 비소비지출은 74.7% 증가하여 같은 기간 가계소득 증가율 58.2%를 상회했다. 그 결과 가계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03년 17.0%에서 ’13년 18.9%로 높아졌다. 부문별로는 사회보험(130.9%), 이자비용(114.2%), 경상조세(113.0%), 연금(84.3%) 등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넷째, 주택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주거비용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05년∼’10년 기간 중 우리나라 전체의 주택 자가 점유비율은 55.6%에서 54.2%로 하락했으며, 수도권(50.2%→46.4%)과 서울(44.6% →41.1%)의 감소폭이 더 컸다. 가계의 주택 전·월세 거주비율이 확대되면서 전·월세 가격이 상승해, 주택임차료지수(2010=100)는 ’05년 92.5에서 ’13년 111.2로 증가했다. 경기가 장기 저성장 기조로 들어선 가운데 주택 실수요자층이 감소하면서 주택시장은 구조적으로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매가 하락과 거래 부진으로 매도차익 실현이 어려워지면서 담보대출 상환에 부담을 겪는 하우스푸어 가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소비성향은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가계의 경직성 경비인 교육비와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10%에 달한다. 특히 40대 가구의 경우 가처분소득의 평균 14%를 자녀 교육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 대비 교육비 지출 비중(OECD, ’12년)은 6.7%로, 미국(2.4%), 일본(2.2%), 영국(1.5%) 등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가계의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 가처분소득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지난 10년(’03∼ ’13년)간 의료비 지출액은 연평균 5.3%씩 증가해, 가처분소득 증가율(4.5%)보다 높았다. 반면에 지난 10년간 가처분소득 대비 오락·문화 및 음식·숙박 지출 비율은 감소했는데, 이는 가계가 경직적 지출 증가에 대비해 선택적 지출 비중을 줄인 결과로 보인다.

여섯째, 고령화 진전 속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대되면서 보수적 소비성향이 확산되고 있다. ’08년 60세 이상 고령층의 평균소비성향은 78.3%를 기록했으나, 이후 뚜렷한 감소세를 보여 ’13년에는 72.3%로 낮아졌다. 고령화에 따른 은퇴가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고령층의 보수적 소비성향이 전체 가구의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청장년층의 소비성향도 ’08년 73.0%에서 ’13년 71.6%로 하락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거래 비중이 높은 경제는 내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국내경제가 해외충격에 취약해져 거시경제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민간소비의 위축은 그 자체로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실제로 1990년대에 60% 가까이 달했던 민간소비의 경제성장률 기여율은 2000년 이후에는 30% 후반대로 하락하여 소비부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민간소비 활성화, 경제의 선순환 구조 회복이 관건
위축된 민간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증대 → 고용창출 → 소득개선 → 소비증진 → 시장확대 → 투자증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강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아울러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 억제 및 기존 부채의 축소 조정을 유도하는 한편, 주거비, 사교육비, 의료비 등 가계의 경직성 지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미시적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yokim@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4년 10월호 [초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