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책의 역할과 세율인하의 선행과제

[경제시론] 2005-12-16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안종범

세금은 인류역사에서 늘 큰 힘을 갖고 등장해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금 때문에 정권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다. 로마와 이슬람이 세금 때문에 망해가기 시작했다거나 혹은 아즈텍문명의 몰락이 가혹한 세금이 동인이 되었다는 가설도 제기될 정도이다. 우리역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구려, 신라 그리고 조선은 공통적으로 세금수탈에 대한 강한 저항과 재정파탄이 몰락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결국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세금을 잘못 거두면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증가하여 경제를 위축시키고 나라가 위태로워 질 수 있는 반면에, 세금을 잘 거두면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세금으로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잘 가려내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국정운영자의 능력이라 하겠다. 단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세금으로 잡겠다고 온갖 세금강화대책을 다 내놓는 것은 책임감 있고 유능한 국정운영이라 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경제를 살리는 수단으로 세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기업이 열심히 뛰려는 의욕을 갖도록 해줘야 하는데, 바로 그 역할을 세금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자에게는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기업가에게는 투자의욕과 생산의욕을 고취시키는 조세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 근로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불만부터 해소시켜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해 소득파악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을 낮추면 된다는 단순논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율인하가 보다 큰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주요한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세율인하보다 선행되어 해결해야할 과제는 첫째, 각종 비과세 감면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경쟁국과 세금에 있어서 효율성 경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금감면에 대한 재검토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세제도는 각종 감면으로 세금의 대상이 되는 소득이나 이윤의 폭이 좁아서 세율을 인하하더라도 세금경감의 폭이 외국에 비해 크지 않다. 따라서 복잡한 세금감면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대폭 정비하고 축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복적이고 유사한 감면이 있으면 과감히 통폐합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감면제도는 시한을 두고 폐지하도록 하는 등 비과세와 감면의 전반적인 정비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기업들에게는 최저한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보다 실질적인 혜택이 될 수 있다. 각종 공제와 감면 등으로 과표가 ‘0’이 되더라도, 최저한의 세금을 납부하도록 한 최저한세제도하에서는 법인세율 인하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기업의 경우 최저한 세율을 15%에서 13%정도로, 그리고 중소기업의 경우 감면 전 과세표준의 10%에서 8% 정도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준조세제도의 정비이다. 준조세는 조세로 정의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세와 같은 성질을 갖는 공과금 또는 기부금을 의미하며, 순수 법정 부담금만을 포함하는 협의의 정의에서부터 목적세까지를 포함하는 광의까지 다양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이러한 준조세는 우리 기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각종 부담금들을 통합 관리하고 나아가 부담금 중에서 세금의 성격이 강한 것은 세금으로 전환하고 당초 취지가 퇴색된 것은 폐지해야 할 것이다.

넷째,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우리 소득세와 법인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가상승을 세제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물가상승으로 명목소득이 높아지면 누진적소득세 혹은 법인세체계에서 실질 세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시절에는 수년만 세율체계와 공제수준을 유지만 해도 세수가 저절로 늘어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과 핀란드와 같이 물가상승에 연동해 세율체계를 조정하는 물가연동세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감세논쟁에서의 핵심은 지출확대보다 감세가 더 경기활성화에 효과적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율인하 이건 지출확대 이건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과세기반이 얼마나 넓고, 그리고 우리 재정지출의 경직성이 얼마나 큰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바로 이점에서 감세논쟁의 핵심은 세율인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사전정비방안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세금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