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금지제도 도입의 문제점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경제시론] 2012-09-14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이철행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논의되었던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남경필 의원 대표발의)이 지난 8월 6일 국회에 제출됐다. 발의 이유는 대기업집단의 오너들이 순환출자를 이용해 적은 자본만으로 그룹전체의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고 있으며,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 괴리 심화나 과도한 경제력집중, 가공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울러 환상형 순환출자는 상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상호주식보유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점을 차단하기 위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해서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주된 내용이다.

환상형 순환출자는 해외 유수기업들의 지배구조에서도 나타나
정치권이 규제대상이라고 보는 환상형 순환출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해외 유수기업들에서도 볼 수 있는 출자형태이며, 이를 금지하는 국가는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본 도요타 그룹, 프랑스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 인도 타타그룹, 캐나다 에드워드 앤 피터 브론프만 그룹, 독일 도이치뱅크 그룹, 대만 포모사 그룹 등도 순환출자가 있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 기업들에게만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우선, 순환출자 금지의 근거로 제기된 가공자본 형성, 소유지배 괴리, 경제력집중 등에 대한 냉철한 고민이 필요하다. 가공자본은 법인 간 출자가 있으면 항상 발생한다. 순환출자뿐만이 아니라 피라미드 출자, 지주회사 계열사 간 출자 등 모든 법인 간 출자거래에서 가공자본은 발생한다. 순환출자 금지를 주장하는 측에서, 동일그룹 계열사 간 출자만 가공자본이 발생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다. 2011년 3월말 현재 순환출자 구조가 없는 한국전력공사는 가공자본비율이 43%로, 총수가 있는 민간기업집단 평균 가공자본비율 37.6%보다 높다.
출자구조가 단순하여 투명성이 높은 지주회사체제 기업집단이 비지주회사체제 기업집단보다 가공자본비율이 오히려 높다.
2011년 4월 공정위 발표자료를 분석해보면, 지주회사 그룹의 가공자본비율 평균치(41.9%)가 비지주회사 그룹의 가공자본비율 평균치(35.4%)보다 오히려 높다. 따라서 순환출자가 있는 민간 기업집단의 가공자본이 문제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집단의 대주주 일가 지분(소유집중)이 줄어들고 계열사 보유 지분이 늘어나는 ‘소수지배구조’, 즉 소유지배 괴리는 계열사가 늘어나 기업집단이 커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총수 유무, 순환출자 유무, 지주회사 형태 여부 등과 관계없이 계열사를 통한 출자가 많아지면서 기업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대주주의 출자비중이 줄어들게 되어 소유지배 괴리가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소수지배구조는 정부정책의 결과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1972년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 1990년대의 소유분산 우량기업과 기업집단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면제, 외환위기 당시 빅딜(강제기업인수) 및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200%로 낮추는 과정에서 계열회사들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의 결과로 소위 ‘소수지배구조’로 유도된 측면이 있다.

투자위축 및 일자리창출 저해 우려돼
대규모 기업집단의 일반집중(대기업 매출액/전산업매출액) 현상 역시 우리나라 법인세 신고기업 매출액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았을 때, 지난 10년 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경제력집중이 심화되지 않았다. 또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매출액 증가율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대기업의 경제력집중이 심화되었다는 주장도 과장된 것이다. ‘대중소기업 매출총액/명목GDP’로 분석하면, 최근 3년 간 중소기업의 매출액 연평균 증가율이 대기업보다 높아 경제력 격차가 2008년도 16.4%p에서 2010년 11.9%p로 줄어드는 추세다.
과거 순환출자가 발생했던 원인은 계열분리, 구조조정, 기업인수과정 등이다. 현대그룹의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그룹으로의 그룹 분할,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현대중공업의 삼호중공업 인수 등이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계열분리,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 금융기관 소유 우량기업 매각 등을 어렵게 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과 같이 금융기관 소유 우량이 국내기업에 인수되지 않고 해외에 매각될 경우 국부유출 논란도 유발할 수 있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도 많이 우려된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중 어떤 한 고리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해당기업들은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할 돈을 지분매입에 쓰게 될 것이다. 최근 일부 기관에서 추정한 10대그룹에 속한 6개 순환출자 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비용은 14.6조 원으로 나타났다. 이 금액은 30대그룹의 2012년도 투자계획 151조 원의 9.7%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정책 실효성 적고 기업부담만 가중시킬 것
현실적으로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다. 정치권이나 일부 학자들은 자사주 취득이나 다른 계열사 지분인수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기업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주장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사라지는 것이 맹점이다. 설령 자본여력이 있는 계열사도 대부분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넘고 독립경영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특별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도 어렵다. 만약 다른 계열사의 이사회가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지분인수를 승인할 경우, 승인한 이사들은 주주들로부터 배임소송을 당한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순환출자 해소과정에서 소액주주가 겪게 될 피해나 해외매각에 따른 국부유출 등의 우려를 감안하지 않고 있다. 의결권이 제한되는 순환출자 관련 기업의 주식이 제3의 기업으로 매각된다든지 주식시장에 매물로 나올 경우 주가 약세와 이로 인한 소액주주 등 주식 투자자의 손실은 명약관화하다. 또한 지분을 국내기업이 인수하지 못하게 되고 외국기업이나 헤지펀드에 경영권이 인수될 경우, 해당 기업 근로자의 고용, 자산매각 및 배당 증가 등으로 결국 국부유출 논란이 일 것이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소유지배 괴리문제 해소 등 정책 실효성이 적고, 기업부담만 가중시킨다고 순환출자제도의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 정치권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

(hank0327@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2년 9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