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 논란과 향후 과제

[경제시론] 2013-06-10 | 전경련 산업본부 규제개혁팀장 고용이

지난 5월 7일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와 사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법은 법안의 내용과 절차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할지도

통과된 법안 내용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과도한 과징금 규정이다. 해당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의 대안은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할 수 있고, 영업정지 대신 사고회사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만일 과징금이 매출액의 10%라는 규정이 그대로 통과됐다면 단 한 번의 사고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이 속출했을 것이다.
2012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화학물질을 많이 다루는 국내 화학·석유업체 10곳의 매출액은 연 10~73조 원에 달하지만 영업이익률은 2~2.7%로 0.2~2조 원 수준이다. 영업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이 연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개정안이 환노위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계는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고, 경제5단체 부회장이 산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기 위해 국회 법사위를 찾았으나 헛걸음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매출액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규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논란 끝에 국회 법사위는 과징금 규모를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로 축소하여 법률안을 통과시켰지만, 일부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과징금 때문에 도산할 수 있을 만큼의 과도한 규모다.
둘째, 환노위 안 중 수급인(하도급업자)의 위반행위를 도급인(원청업자)의 위반행위로 간주하는 조항도 큰 문제가 됐다. 환노위 대안은 ‘수급인의 위반행위는 도급인의 위반행위로 본다’고 함으로써 도급인이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수급인의 불법행위가 고스란히 도급인의 잘못이 되어 행정제재와 형사제재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는 법리적으로도 민법상 과실책임의 원칙과 형법상 죄형법정주의에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법사위에서는 도급인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수급인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수급인의 위반행위를 도급인의 위반행위로 간주하는 규정을 ‘수급인의 법 위반에 따른 효과는 도급인에게 미친다’고 수정하여 수급인의 잘못이 곧바로 도급인의 잘못이 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미친다’가 어떤 의미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셋째, 환노위의 대안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로 인한 화학사고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금고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형법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법령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과 비교하여 과도한 형량이다. 특히 형법이나 산업안전법은 벌칙의 상한선을 정하고 있는 데 비해 환노위의 대안은 ‘3년 이상의 금고’ 규정과 같이 하한선을 정했다. 해당 벌칙은 법사위에서 ‘10년 이하의 금고나 2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수정되어 통과됐다.

의원입법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 개선해야

산업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러한 과도한 입법의 주요 원인은 의원입법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국회의원이 발의한 4개의 일부개정안과 1개의 전부개정안을 병합심사하여 마련한 상임위의 대안이다. 의원입법이다 보니 정부입법이라면 거쳐야 할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영향평가, 법리적 부분을 심사하는 법제처 심사 등의 절차 없이 법안이 상정된 것이다.
의원입법의 상당수는 정부입법이었더라도 입법절차를 통과할 수 없었을 규정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예를 들자면, 당초 의원입법안은 ‘화학사고로 인한 과징금을 매출액의 2분의 1 이상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상한이나 하한 규정이 아니므로 정책당국의 의지에 따라 매출액의 0%에서 최고 100%까지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입법이었더라면 감독관청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유사 위반행위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며, 과도한 처벌과 위헌성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입법심사과정을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유해화학물질관리법처럼 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입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원입법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의원입법을 통해 신설·강화되는 규제에 대한 규제심사제도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같이 독립된 기구를 설치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고, 국회 내 입법조사처를 활용할 수도 있다. 만일 의원입법 수가 너무 많아 모든 법률안의 검토가 어렵다면 우선 전부개정안만이라도 규제심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논란이 되는 법률안의 경우 반드시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모든 정부입법과 의원입법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번과 같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논란이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공청회 등을 거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절차와 내용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앞으로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개정해야 하는 2라운드가 남아 있다. 지난 5월 27일에는 환경부 장관, 행안부 장관, 산업부 장관, 노동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이 모여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위한 정부-산업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환경부는 과징금 부과기준에 대해 단순 실수나 경미한 사항, 천재지변의 경우 계도나 경고조치, 경미한 영업정지를 적용하고, 고의나 중과실, 반복 발생 등 의도적·악의적 상황이 중첩되어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단계적인 영업정지를 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설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과징금 부과·감경기준 등 하위법령안을 마련할 때 정부-산업계 협의체를 구성하여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쪼록 하위법령을 개정할 때는 산업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기업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go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6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