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선진화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을!

[경제시론] 2008-06-18 | 강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민경국

올해도 경제성장이 대단히 불안정하다. 투자도 아직 저조하다. 일자리도 불안하고 소득도 불안하다. 저소득층 문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제불안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경제의 이런 취약성은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이 또렷이 입증한다. 한국은 국가경쟁력 조사 대상 세계 55개 국가·지역 가운데 겨우 31위이다. 경쟁력을 구성하는 정부부문(37위), 경제성과(47위), 그리고 기업 효율성(36위) 등이 모두 저조하다. 노동관계 생산성은 55개 국가·지역 중 55위, 더없이 민망할 정도다.

경제의 발목 잡는 첩첩규제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경제활동을 옥죄는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야기하는 규제, 주택·부동·규제, 교육과 관련된 규제 등 지난 십수년 동안 첩첩이 쌓여온 것들이다. 통신, 금융보험, 교육, 보건복지 분야의 높은 진입 장벽은 악명 높다.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은 아예 금지돼 있다.
국가경쟁력을 좀먹고 경제불안을 야기하는 규제들, 이들을 혁파하여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그리고 기업규제 해소,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양질의 교육 등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 성장동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규제해제를 국정 제1목표로 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규제를 풀려고 하지 않은 정부도 없다. 정권마다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고, 규제개혁기획단을 구성해 매년 수십 건, 수백 건씩 규제를 풀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규제건수는 계속 늘기만 했다. 오른손으로는 규제를 풀면서 왼손으로는 새로운 규제를 더 많이 만들어온 것이다.

정치권의 치명적 자만과 기회주의

규제가 첩첩이 쌓이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부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면 두 가지 이유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의도적인 계획과 간섭을 통해서만 시장과 시민사회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비간섭주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제한의 경제자유 대신에 국가에 의한 규제와 간섭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국가의 규제담당자들이 계획과 간섭에 필요한 지식을 완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들의 규제와 간섭은 수많은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여 원래의 목적과 가치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른 간섭을 불러오고 있다. 미제스(L. v. Mises)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규제가 규제를 낳고 또 규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국가의 규제담당자들이 계획과 규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완전히 가지고 있다면 한 번의 규제로 끝날 것이다. 몰랐던 부작용이 자꾸 생겨나니까 이를 제거하기 위해 또다른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규제가 첩첩이 쌓이는 이유는 하이에크(F. A. Hayek)가 말하는 ‘치명적 자만’ 때문이다.
규제가 규제를 낳는 이런 자만에서 비롯된 경제개입의 유형은 대단히 많다. 투기 명분으로 주택수요를 규제하면 공급부족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야기하고, 이 공급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또다른 규제를 야기한다. 일자리 안정을 위한 노동시장 규제는 신규고용을 꺼리고 이로써 실업의 증가를 야기한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지출을 늘린다.
규제가 첩첩이 쌓이는 두 번째 이유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기회주의’ 때문이다. 뷰캐넌(J.M. Buchanan)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치적 과정의 의사결정은 이권추구와 단기정책의 남발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정치적 과정의 참여자들의 기회주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다양한 형태의 특권을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요구한다. 그 특권은 잠재적 경쟁자로부터의 보호라는 형태를 띤다. 각종 면허, 인허가 또는 관세·비관세장벽 등 특정 산업이나 직업그룹을 편들기 하는 규제들이 그런 유형에 속한다. 입법자들은 그런 요구를 뿌리치기가 곤란하다. 정치적 생명이 그들의 지지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과정은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가져다주는 단기적 정책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재분배정책이 전형적이다. 부유층에서 고율과세로 세금을 거두어 저소득층에 나눠주면 당장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근로의욕의 상실로 전체 경제의 저성장을 야기한다. 그럼에도 근시안적 정책이 선호되는 이유는 유권자들 중 누가 단기정책의 효과를 차지할 것인지는 분명하지만 장기정책에서는 그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들도 장기정책보다는 단기정책을 선호한다. 시장경제원칙을 지키는 정책과 같이 장기정책은 당장 유권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그들의 불만을 사는 것은 확실하지만 장기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이로움에 대하여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첩첩규제는 잘못된 헌법의 탓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왜 첩첩규제를 낳은 치명적 자만과 기회주의가 정치적 과정을 지배하는가이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헌법을 보아야 한다. 정치질서의 기반이 되는 것은 국가헌법이고, 이것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119조에서 제127조까지 경제와 관련된 우리나라 헌법을 자세히 보면 세 가지 결함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로 의회의 입법을 제한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의회에서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건수 위주 또는 인기 위주의 입법을 막을 장치도 없다. 둘째로 국가가 규제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장치도 미흡하다. 오히려 국가에게 경제를 규제할 권력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한국헌법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복지국가의 환상에 젖어 있다는 것, 이것이 세 번째 결함이다.
요컨대, 한국헌법은 경제에 간섭하는 국가의 공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규칙이 미흡하다. 그것은 규제가 누적되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가 국가경쟁력의 약화와 경제불안이다.
이런 헌법을 가지고는 경제선진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헌법 개정이다. 시장경제를 규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현행 헌법을 시장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정치권의 의무라고 선언하는 헌법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이런 헌법이야말로 경제불안을 없애고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경제선진화를 위한 헌법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6월호 [시장경제 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