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의 문제점

[경제시론] 2011-06-09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이철행

지난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정부가 관료적이라지만 대기업들이 더 거대 관료주의에 빠져있다. 이미 거대 권력화된 대기업은 스스로 혁신할 능력이 없다”면서 국민연금의 보유주식에 대한 주주권을 강화하여 대기업 경영진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자유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연금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한나라당 이주영 신임 정책위의장도 취임 직후 국민연금의 대기업에 대한 주주 의결권 행사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 5월 18일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곽승준 위원장과의 회동 이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민간전문가로 의결권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관치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면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 행사에 조건부로 찬성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최근 곽승준 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요 기업 주총 시즌인 내년 3월부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해 주주권 행사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위한 별도의 법 개정 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 강화와 관련된 일련의 조치는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를 성급히 추진하는 것이 국민연금 실제 소유자인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발전방향에 도움이 되는지는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제까지 주주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이고, 실제로 국민연금은 2007년 5.0%, 2008년 5.4%, 2009년 6.6%, 2010년 8.1% 반대표를 행사했다. 2010년에는 총 528회의 주총에 참석하여 2,153건의 상정안건 중 174건을 반대했다. 이사 및 감사 선임 반대가 제일 많았고(96건) 정관변경(41건), 이상 및 감사의 보상(24건) 등의 순이었다. 이사 및 감사 선임에 대한 반대사유는 사외이사·감사의 장기 재직으로 인한 독립성 결여와 이사회 출석률 저조 등이다.

이렇듯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경제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가? 주주권 강화란 의결권과 달리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대표소송, 주주제안권, 이사해임청구권, 임시주총소집권, 장부열람권 등 다양한 형식의 감시권한 강화 행사를 의미한다.

2010년말 국민연금의 자산규모는 324조 원이며, 이 중 17%인 국내주식의 시가총액은 55조 원으로 KOSPI 전체시가총액의 4.8%를 차지한다. KOSPI에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 보유한 기업은 139개다. 연금적립기금이 2040년 2,0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당분간 국민연금의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상황이 지속되고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는 추세(’09년 12.0%→’10년 16.6%)여서, 향후 운용기금 중 국내 주식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데 국민연금의 실제 운용주체가 정부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가 정부와 정치권에 좌우되는 관치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운영계획, 의결권 행사지침 등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전체위원 20인 중 복지부 장관과 부처 차관(당연직), 단체장(관계전문가) 등 정부 인사가 8인으로 정부 의도대로 위원회의 운영과 의사결정을 끌고 가고 있다.

현재 의결권 행사지침을 검토하고 자문하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도 전체 9인 중 7인이 민간으로 구성되어 2005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나, 연간 1~2회 형식적으로 개최하여 위원회의 전문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기금운용본부가 전담해서 행사하고 있으며, 위원회가 찬성 또는 반대 의사결정을 한 사항이 거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미래기획위원장이 합의한 ‘주주권행사위원회’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와 어떻게 차별성을 가지면서 관치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가 과연 바람직한 주주권 행사인지 의문이 든다. 곽위원장은 지난 4월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2대 주주로 보유지분(5.00%)이 이건희 회장(3.38%)보다도 많은데,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해 왔는지 매우 의문시된다. 삼성전자가 기존의 핸드폰 시장에 안주한 결과 아이폰 쇼크에 당황해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나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직접 개입보다는 공적 연기금이 보유한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보다 시장친화적인 방법이다”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기업별로 무한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지배구조와 사업포트폴리오를 꾸준히 구축해오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어떤 지배구조로 변화해라, 어떤 산업이 신수종업종이니 그쪽으로 투자해라 등과 같이 경영의사결정을 지도하는 것은 전문성이 없는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훈수를 두는 꼴이다. 이렇게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식의 주주권 행사는 결국 기업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게 되고 관치논쟁을 조장할 수밖에 없으며,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과 기업 그리고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국민연금의 안정적인 수익성 제고를 위한 운용 효율성 개선방안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조직을 독립하고,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보유주식 의결권 행사의 전문성, 책임성, 투명성을 강화하여 수익률 제고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의결권이 행사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 자문기구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적립기금은 2043년 2,465조 원으로 최고치에 도달하고, 2044년부터 5조 3,560억 원의 당기 적자가 발생하여, 이후 적자폭이 커지면서 2060년경 적립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남녀 수명이 85세와 90세로 연장될 경우, 소진시기는 2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지는 시점이 오면 보유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외국인이 먼저 매도하게 되면 국내 주식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고 수익률도 저하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하기보다는 일정비율로 묶어두고 늘어나는 기금의 운영은 해외주식투자나 자원개발 등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 주식투자도 배당률이 높은 우선주에 투자하는 것이 관치오해도 불식시키고 수익률을 제고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hank0327@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1년 6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