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방어에 대한 입법·사법정책의 방향

[경제시론] 2006-03-31 | 충북대 법과대학 교수 송종준

적대적 M&A 방어에 대한 입법·사법정책의 방향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의 대표적인 상장기업 주식의 대부분을 외국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외국계 투기펀드가 경영권 공격을 노골화하고 있는 점은 심히 우려할만한 현상이다. 지난 2003년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SK(주)의 지분을 취득하여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에 이어 올해에는 국제적인 기업사냥꾼이라고 불리우는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한 적대적 M&A의 수순을 밟고 있고, 앞으로도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대적 M&A에 대하여 갖는 사회경제적 우려로부터 다양한 방어수단의 도입을 위한 입법의 시급성이 강조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적절한 입법대책을 강구하여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 중반부터 주회사법과 연방법에 의하여 적대적 M&A를 규제 또는 억제하는 입법을 완료한 바 있고, 유럽연합에서도 2000년대 초에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법제를 확정하였으며, 일본에서도 방어수단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적대적 M&A를 전면적으로 자율화하여 경영권 공격을 자유롭게 하는 반면, 경영권 방어는 상대적으로 억제되는 불균형적인 입법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울러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의 위법성을 다투는 소송에 있어서도 명확한 사법판단의 법리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회사법 개정작업에서는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입법례를 검토하여 그 도입여부를 논의하고 있지만, 그 윤곽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차등의결권주식, 의결권제한주식, 신주매수선택권제도, 거부권부주식 등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고, 학계에서도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방어의 자율과 방어수단의 다양화를 위한 입법에 동의하는 것이 주류이다. 상법상으로 자본조달의 유용한 수단 으로서 다양한 주식제도나 새로운 혼합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입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직접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차등화하는 방어수단의 도입은 자칫 지배구조의 왜곡 또는 지배권의 영속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제한된 범위내에서 법정책적 목적을 특정하여 정관자치에 의하여만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입법기술상으로 어려운 점은 있지만 검토해 볼만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다양한 방어수단을 도입하더라도 경영권위협의 국면에서 일정한 방어책을 행사하는 것이 적법한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입법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이사회에 회사 및 주주의 최선의 이익을 해치지 아니하는 합리적인 방어조치를 취할 수 있고, 적대적 M&A가 회사와 정당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 있다는 포괄규정을 두는 것이 그것이다.

아울러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로부터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입법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OECD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국내외 자본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OECD 자본이동자유화규약상으로도 적법하게 외국자본에 대한 방어벽을 설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외국인으로부터 국가안보의 보호, 공공질서의 유지 등과 같은 목적이 있는 경우, 공공적 법인 또는 국가의 전략적 산업의 경우에는 관련 특별법을 개정하여 해당 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의 제한 또는 차등화를 입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입법의 제정과 함께 사법부의 법정책적 판단 법리의 형성과 적용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대부분의 적대적 M&A에 있어서는 양 당사자간에 소송에 의한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몇몇 적대적 M&A사례에서 방어수단의 위법성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된 바 있지만, 사례마다 법원이 제시하는 방어법리가 모호하거나 구시대적 해석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적대적 M&A에 의하여 투기적인 자본이득을 획득하려거나 기업의 유지존속이념에 반하는 초토화적 경영권쟁탈에 대하여 사법부가 가져야할 법정책적 가치와 철학을 엿볼 수 없다.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쟁탈이 벌어지는 경우 대상회사의 이사회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해석원리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의 허용은 공격자와 방어자간의 법적 형평의 관념에서 법논리상 정당성이 있다. 아울러 단기적 관점에서 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의 경제적 이득을 중시한다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과 국민경제 모두에 해악적 효과를 가져오는 투기적 M&A나 기업파탄적 M&A를 억제 하는 것은 법정책적 정당성을 가진다. 그리고 국가안보, 공익, 국민경제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는 외국자본에 의한 M&A에 대하여 적절히 방어하는 것은 OECD규약상으로도 법적 정당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법부가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에 대하여 그 위법성을 합리적으로 판별해 주는 합당한 법리를 구성하고 적용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의 사레별 특성을 감안하여 법원이 방어행위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유연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참고할만하다. 우리법의 정신과 취지에 비추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 방어법리의 기본 방향은 크게 네 가지 원칙에 의하여 설정될 수 있다.

첫째, 방어행위의 금지에 대하여 직접 법령이나 정관에 규정된 바가 있으면 그 방어행위가 법령과 정관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인지 여부에 따라 그 적법성을 판단하면 족하고 방어에 따르는 다른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둘째, 특정한 방어행위의 금지에 대하여 직접 법령이나 정관에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경영권 방어행위의 동기나 목적, 방어수단의 합리성, 회사법의 정신, 회사와 주주의 이익관계, 방어절차의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방어행위의 적법성을 판단하여야 한다. 셋째, 적대적 M&A로부터 순전히 경영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방어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이를 일률적으로 위법하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고, 이 경우에도 적대적 기업인수를 시도하는 자본의 성격 및 인수의도, 기존 지배주주 및 현경영진의 장단기 경영방침, 대상회사의 기업문화와 대상회사의 사업내용이 사회경제적으로 차지하는 중요성, 기업인수로 인한 종래 사업의 지속 전망에 비추어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대상회사와 일반주주에게 이익이 된다거나 특별한 사회적 필요가 있고, 방어행위를 실행하기까지의 절차에 객관성, 합리성이 있다면, 그러한 방어행위는 적법한 것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적대적 M&A에 직면한 대상회사가 안보관련산업, 국가기간산업, 공공적 법인, 국가의 전략적 산업 등과 같이 사회경제적으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큰 경우, 적대적 기업인수자가 투기자본인 경우, M&A후 자산의 분리매각으로 사실상 기업을 해체하고자 하는 경우, 1단계에서 지배권을 취득한 후 2단계에서 잔여소수주주를 퇴출시키고자 하는 경우, 기업인수 후 사업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넷째, 대상회사가 해산 또는 처분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에 있는 경우, 대상회사의 경영구조상 현경영진의 교체가 불가피한 경우와 같이 현경영진에 의하여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적정하지 않은 경우 등에는 대상회사가 방어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오히려 경영진은 대상회사의 매각가격을 극대화하여야 할 적극적인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와 관련하여 입법 정책적으로는 다양한 방어 수단을 제공하여 대상회사에게 합리적인 방어의 기회를 부여하여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방어를 위한 입법조치와 함께 사법부에 의한 법정책적 가치 확립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법정책적으로는 대상회사가 방어수단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적법성 판단을 위한 명백하고 예측가능한 방어법리를 형성하여 적용하는 것이 방어를 둘러싼 법적 안정성을 위해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